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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로 보는 인권 [2024.09~10] 재난피해자의 권리가 발전하고 있다

 

‘4.16 세월호참사’ 이전에는 재난참사 피해자의 권리 자체가 없었다. 세월호참사는 재난을 대해온 대한민국의 전통적인 프레임을 전환시켰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즉, 세월호참사는 기존의 ‘사고 프레임’에서 ‘사건 프레임’으로 바꾸어 놓았다.

 

재난피해자의 권리가 발전하고 있다

 

사고는 ‘우연히 발생한 불행한 일’, 재수 없이 당한 일 정도다. 그래서 그 사고는 빨리 수습하고, 원래대로 돌아가게 만드는 게 최선이다. 불행한 일은 이제 없을 것이라고 빨리 안심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도록 하면 되는 일이다. 세월호참사 이전, 재난참사를 대하는 대한민국의 공식이었다. 그러기에 피해자들에게 아주 적은 보상을 생색내서 해주고, 장례를 빨리 치르게 종용한 다음, 장례 뒤에는 부상자를 적당히 치료해주고, 피해자들에게 했던 수많은 약속 중에 위령탑 하나 세워주고 끝이었다. 위령탑도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되도록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세우고는 했다(대구지하철화재참사의 경우에는 위령탑에 참사와 피해자 위령이라는 말도 넣지 못하고, 추모공원도 아직 제대로 된 이름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 20년도 더 지났는데도). 피해자들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요구는 곧 쉽게 묻혀버리고는 했다. 그러니 참사 때마다 해당 지자체에서 발간된 백서들은 참사의 원인 규명에는 관심조차 돌리지 않았고, 재발방지대책도 제시하지 못한 ‘맹탕백서’가 되고 말았다. ‘소 잃고도 외양간 고칠 줄 모르고’ 지나온 세월이 70년이었다. 그때의 ‘사고-보상-치료’에 머물렀던 재난 공식은 세월호참사 이후 10년 동안의 피해자와 시민들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사고’에서 ‘사건’ 프레임으로

 

세월호참사에서는 구조하지 않는 국가, 진실을 은폐하고 억압하는 국가가 고스란히 확인되었다. 세월호참사를 목격한 시민들은 “이게 나라냐!”란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왔고, 그 구호에 담긴 분노는 결국 현직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동력이 되었다. 시민들은 이 참사를 무책임한 국가의 문제로 보게 되었다. 그런 눈으로 이전부터 발생한 참사를 재조명하게 되었다. 재난참사 때마다 반복되는 ‘인재’(人인災재) 타령과 ‘안전불감증’이란 말에 속지 않게 되었다. 그 언설에는 국가의 무책임을 은폐하고 시민들 개인의 잘못으로 돌리려는 의도가 있음을 간파했다. 그러므로 중요한 일은 진실을 밝히는 일- 참사 초기부터 피해자들과 시민들은 진실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비극이 반복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우고, 묻어 버릴 일이 아니라 오래도록 기억하고 교훈을 찾아야 할 일, 그래야 사회가, 공동체가 치유될 수 있으며, 재발 방지가 될 것이라는 합의점에 도달했다. ‘기억의 힘’으로 보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피해자와 시민들의 집요한 노력으로 ‘애도 공동체’는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사건 프레임’은 재난참사를  잘못된 시스템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일로 인식하는 것이다. 인식의 틀 자체가 바뀌니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밝혀야 하고, 그로부터 재발방지대책을 만들어내는 일로 나아가야 한다. 따라서 사건 프레임은 ‘사건-진실-치유’의 과정으로 재난참사를 인식하는 것이다. 세월호참사 이후 10년 동안 피해자의 권리가 제시되고, 발전되어 법률에도 반영되기 시작했다. 세월호참사 이전에는 피해자의 권리에 대한 논의 자체가 없었다.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이하 국민대책회의, 4.16연대의 전신)에서는 피해자의 권리에 주목했다. 재난참사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과 지원 등이 명백한 권리로서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정부와 지자체 등 정치권력의 의지 여하에 따라서, 국민들의 여론에 따라서 달라져 왔다. 피해자들은 권리의 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정부와 지자체의 ‘동정과 시혜’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세월호참사 이후 시민들은 피해자의 권리를 발견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사진=10·29 이태원 참사 200일을 하루 앞둔 지난 15일 오후 서울시청에 마련된 이태원참사 분향소를 찾은 외국인이 추모하고 있다. [연합] [출처] - 헤럴드경제 [원본링크] - https://news.heraldcorp.com/view.php?ud=20230516000470

 

 

피해자 권리의 발전

 

국민대책회의는 시민들의 토론을 통해서 2015년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기념일에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인권선언’을 발표했다. 재난상황에서 피해자와 시민들이 가질 권리에 대해서 국제인권기준을 검토하고, 1백 번이 넘는 시민토론을 거쳐서 이 선언을 발표했다. 전문과 13개 조항으로 이루어진 선언의 주요 내용들이 최근에 제정된 10.29이태원특별법 제3조(피해자의 권리)에 반영되었다. ‘중대재해처벌법안’ 제정운동을 세월호참사 초기부터 시작했고, 그 캠페인은 시민들의 안전의식을 고양했다. 그런 덕분에 산업안전보건법 전면개정을 이룬 뒤, 중대재해처벌법까지 갈 수 있었다. 그렇지만 법 집행 의지가 부족한 정부는 이 법을 유예하고 후퇴시키려 한다. 산업현장에서 일어나는 중대재해, 시민들의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시민재해의 책임을 윗선에 물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에 기초해서 탄생한 이 법률을 정부와 기업들이 반길 리 없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23년 3월 27일, 전원위원회를 통해서 ‘재난피해자 권리보호를 위한 인권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서 정부와 지자체가 수용할 것을 권고했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조사를 종료하면서 낸 권고에 이어서 국가기구가 처음으로 피해자의 권리를 인정하고 이를 정식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매우 크다. 국가인권위원회 가이드라인은 전문과 31개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국제적인 인권기준에 따른 재난피해자 권리와 관련한 모든 영역이 망라되어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시민사회는 한 발 더 나아가 ‘생명안전기본법’을 내놓았다. 이 법안은 세월호참사 이후 시민사회에서 논의된 대안들이 망라되어 있다.

 

먼저, 이 법안에는 안전권과 피해자의 권리를 규정했다. 대한민국 수천의 법률들에 안전권이나 피해자의 권리가 없었다는 점이 세월호참사 이후 확인되었고, 따라서 이를 분명히 법률에 규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반영되었다.

 

두 번째, 환경영향평가제도처럼 안전영향평가제도를 도입할 것으로 제안하고 있다.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마지막 보루와 같은 규제도 기업의 활력을 위축시킨다는 이유로 철폐시키는 일 같은 것을 막고자 한다. 지난 정부들에서 이루어진 규제 완화나 철폐로 인한 재난참사(세월호참사, 가습기살균제 참사, 종종 발생하는 대형 화재참사 등)를 보아왔기 때문이다. 법과 제도, 정책을 시행할 때는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이 없는지를 면밀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당연한 요구가 반영되었다.

 

세 번째, 독립적인 중대사고조사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독립적이고, 상설적인 조사기구가 제대로 작동되어야 제대로 원인규명도 하고, 재발방지대책을 만들 수 있다고 보았다. 중대 재난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특별법을 제정하고, 그 법에 따른 한시적인 조사기구를 만드는 것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점들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축적된 전문성에 기초하여 정치적으로 독립적인 활동을 하는 조사기구가 대안이다. 그와 함께 시민들의 알권리와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는 재난 거버넌스의 원칙들이 담겼다. 시민사회의 피해자 권리 실현을 위한 노력 중에는 지난해 11월 창립된 ‘재난참사피해자연대’를 빼놓을 수 없다. 삼풍백화점 붕괴(1995), 씨랜드 화재(1999), 인천 인현동 화재(1999), 대구지하철화재(2003), 공주사대부고 병영체험(2013), 세월호(2014), 스텔라데이지호 침몰(2017) 참사들과 1994년부터 계속되고 있는 가습기살균제참사 피해자들이 연대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연대를 통해서 “상처 받은 치유자”의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아울러 4.16재단 부설기관으로 올해 1월 활동을 시작한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는 재난참사 피해자연대를 지원하면서 기존 관 중심의 제한적인 재난대응 시스템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면서 재난 거버넌스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모색하게 된다.

 

 

재난 거버넌스 구축을 위하여

 

고인이 된 울리히 벡은 한국사회를 ‘특별히 위험한 사회’로 규정한 바 있다. 한국사회는 과거형의 재난과 미래형의 재난이 중첩되어서 일어나는 특별하게 위험사회라는 것이었다. 세월호참사나 이태원참사는 전형적인 과거형 재난이다.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은 벌써 시작되었다. 온열질환자나 한파질환자로 인한 인명피해가 일어나고 있고, 예전과 달라진 강우 형태는 언제고 홍수피해를 낳을 수 있다. ‘느린 폭력’으로 불리는 미세먼지와 가습기살균제를 비롯한 화학물질에 의한 재난 대비도 안 되어 있다. 국제사회의 논의에서 재난은 새롭게 규정되고 있다. 자연재해가 재난이 되는 경우는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잘못된 시스템과 결합할 때다. 대비가 되어 있다면 자연재해도 재난으로 발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선진국들은 오래 전부터 민관 재난 거버넌스 시스템을 만들고 재난에 대비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형식적으로 재난 거버넌스 안전관리민관협의회, 안전문화운동추진협의회를 구성한 수준이다. 정부나 지자체는 시민사화와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일을 기피하고 있는 것이다. 재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사고 프레임’ 위에 구축된 잘못된 시스템을 혁파하고, 실제로 작동하는 시스템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가이드라인에 기초하고, 시민사회가 내놓은 생명안전기본법안을 제정하는 일, 그리고 민관의 재난거버넌스가 실제로 구성되고 작동되도록 해야 한다. 우리사회가 세월호참사를 겪으면서 발견한 재난상황에서 인권은 이제 구체적인 시스템 구축으로까지 가야 한다. 닥쳐올 재난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이미 우리는 늦었을 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결단해야 한다.

 

1) 이 글은 지난 6월 20일, 21일에 열린 4.16재단 등이 주최한 ‘세월호참사 10년, 진실·책임·생명·안전을 말하다 4.16 국제심포지엄’에서 필자가 기조연설한 내용을 축약, 수정하여 작성한 것임을 밝힙니다.

 

 

글쓴이 박래군은 인권운동가로 4·16재단 상임이사,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로 일하고 있다.

 

글 | 박래군(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 손잡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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