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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2024.09~10] “이상기후, 2차 피해인 산재 위험도 올라간다”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의장1팀 소속 박동근씨

 

폭염과 폭우만이 가득한 한국의 여름을 나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시간당 100mm가 넘게 내리는 위험한 지역이 어디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무섭게 비를 뿌린다. 폭염과 폭우가 오가는 지난 7월 말 경상남도 거제의 옥포산업단지에 위치한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서 의장1팀 박동근씨를 만났다. 8살과 5살 두 딸의 아빠인 그는 17년 전 옛 대우조선해양 정규직 노동자로 입사해 의장팀에서 주로 일해왔다. 의장은 선박 내 구조물이나 장비를 설치하고 원활하게 가동되게 하는 일을 말한다. 길이 400m 높이 30m 이상의 대형 선박 안에는 거대한 엔진룸이 있고 그 안에는 여러 전자장비가 들어간다. 박씨와 동료들은 의장팀 안에서도 전기 결선 업무를 맡아 배가 잘 이동할 수 있도록 한다. 그가 속한 팀이 1년에 최소 4~5척의 배를 건조하니, 그동안 그가 만든 배만 100대 가량은 될 것이다. 그는 자신과 동료들이 처한 노동환경, 특히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업무 환경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박동근씨가 안전모와 장갑, 마스크를 착용하고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야외 작업 현장 앞에 서 있다. 최우리 기자
박동근씨가 안전모와 장갑, 마스크를 착용하고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야외 작업 현장 앞에 서 있다. 최우리 기자

 

주로 어디서 일하시나요.
“공정마다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힘든데, 선박을 짓다 보면 선행 작업이 필요해요. 그 단계에서는 야외에서 종일 일하게 됩니다. 거대한 블록을 조립하는 일이죠. 피의장작업이라고 하는데, 이런 선행 작업이 작업의 20% 정도는 돼요. 상선 담당이라 짧게는 석달이면 배를 건조하니까 한달 좀 안 되게 야외에서 머물게 되지요.”

 

야외에서 작업 중인 노동자들. 최우리 기자
야외에서 작업 중인 노동자들. 최우리 기자

 

외부 날씨를 고려할 때 야외보다 실내 작업이 더 쉬운 편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실내는 공기 순환이 잘 안되는 밀폐된 공간에서 일하게 되지요. 찜질방 같다고들 말해요. 아직 전기 장비 등이 설치되기 전이라 에어컨을 설치하기는 어렵고요. 또 한 공간에서 용접을 하거나 도장(칠하기)을 하는 경우도 있어서 복합적인 일이 다 같은 공간에서 진행돼요. 그러다 보면 열기가 갇히기 쉽고, 분진도 많이 있어서 2차적으로 건강 문제가 뒤따르기 쉽습니다. 그래서 마스크와 안전장비를 꼭 착용하고 일하는데, 얼굴이 빨갛게 익고 숨이 가쁘기도 합니다. 날이 워낙 무덥다 보니 마스크를 착용하면 호흡이 불편하고 갑갑하니 자꾸 풀고 싶어지는 거죠. 야외에서의 온열질환 발병 문제뿐 아니라 2차 건강상 문제를 호소하는 노동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환기가 안 되는 공간에 오래 머물면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나요.
“항상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들 생각하는 편입니다. 어지럽거나 숨이 가빠질 때 ‘이러다 쓰러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주 스칩니다.”

 

회사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옥외 쉼터가 있기는 하죠. 그러나 모든 노동자가 공유하기에는 비좁은 편입니다. 회사 쪽에서는 부지와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에 법적으로 지정한 최소한의 조치나 시설만 제공하고 굳이 노동자들을 위한 선제적 제도 개선 마련에 나서지는 않는 것 같아요. 관리감독자나 인사노무 관리자를 앞세워 휴게시간이나 시작 시간도 감시하다 보니, 대법원 판례가 있어도 여전히 노동자들의 인권은 배제되고 있어요. 너무 더운 날에는 쓰러진 동료도 있지요. 제 주변에서 바로 목격하기는 쉽지 않지만 아예 없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한화오션 거제(옥포조선서)사업장. 최우리 기자
한화오션 거제(옥포조선서)사업장. 최우리 기자

 

 

종일 피할 수 없는 무더위 속 높아지는 산재 위험

 

박씨를 만나러 간 날도 정체 전선은 남한 하늘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비를 뿌렸다. 서울에서 5시간은 달려야 닿을 수 있는 곳 거제는 비가 걷히고 해가 들자 동남아시아에서 느낄 법한 후끈한 열기가 숨쉬기 힘들게 했다. 많은 기후과학자들은 한국 남부 지역의 아열대화 속도를 경고하고 있다. 폭우로 쏟아진 비가 다시 증발되어 생긴 수증기가 대기에 가득 갇히며 체감온도와 습도는 불쾌하게 올랐다. 거제가 고향인 박씨는 가족이 모두 조선소에서 일하거나 일했다. 노동강도가 워낙 강하기에 자신도 이곳에서 정년퇴직한 아버지처럼 조선업에 종사할 생각이 없었지만, 그 역시 이곳에서 일하고 야간대학을 다니며 학업을 마쳤고 가정을 이루며 산다. 일이 고되지만 지켜온 일상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다.

 

 

기후변화를 실감한 사건이 있으셨나요.
“이전 연도와 비교했을 때 너무 빨리 무더위가 온다거나 의외로 선선하다거나 하는 변화를 느낄 때 주로 그렇죠. 예상과 다른 날씨를 접하면 그때 실감하게 돼요. 배에서 일하다 보니 ‘올해 여름은 굉장히 덥고 습하겠구나. 올해 여름은 어떻게 버티지’ 하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폭우나 태풍이 올 때 어떤 일들이 있었습니까.
“수년 전이긴 한데, 태풍이 왔고 선박이 떠내려갔죠. 다시 찾아오긴 했지만 천문학적인 수리 비용이 들었던 걸로 알아요. 못 쓰게 되는 부분은 절단해서 버리고 다시 만들어야 했어요. 태풍이 오면 노조와 회사가 태풍방제팀을 임시로 꾸리고 대응해요. 옥외에 노출된 전기 장비들도 고박을 잘하고 빗물이 안 들어오게 포장을 꼼꼼하게 해야 해요. 물이 들어가면 수십억 대의 손실이 나기 때문이죠. 그 작업을 할 때도 위험할 수 있어요.”

 

또 다른 어떤 팀이 주로 야외 노동을 많이 하나요?
“선박 외부 칠하는 도장팀이 많이 하지요. 화학물질에 노출될 위험도 큽니다.”

 

계절별로 일하는 모습들은 많이 다른가요.
“저희는 여름과 겨울에는 외부 환경 변화가 극심해서 체력적으로 손실이 커 능률이 안나요. 겨울에는 최대한 개인적으로 준비한 방한 용품을 착용하고 여름에는 회사에서 얼린 생수 등을 제공하지요.”

 

이상기후, 2차 피해인 산재 위험도 올라간다

 

 

“혹서기, 기간을 정해 점심시간 연장하자”는 노조의 제안

 

박씨가 속한 전국금속노동조합 대우조선지회에서는 지난 5월 말, 여름 폭염 기간만은 의무적으로 휴게시간을 연장하자고 회사에 제안한 상태다. 이 회사는 기상청 발표 기준 낮 12시 기온이 28도일 때는 휴게시간을 30분 연장하고, 31.5도일 때는 1시간을 연장하는 안을 단체협약으로 정해두고 있다. 그러나 낮 2~5시 폭염에 대한 대책이 없다. 지난 4일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가 폭염 관련 현장 안전 점검을 했을 때 선박 위 온도는 36~37도, 야외 화장실 내부 온도는 38.6도를 기록했다. 8월 19일 거제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 하청노동자 2명은 선박 안 작업 현장과 야외 컨테이너형 화장실 안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었고, 끝내 숨졌다. 박씨도 “노동조합에서는 기온을 관측, 측정하는 기구를 야드(야외)에 설치해 관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야외 노동자들이 느끼는 체감온도에 근거해서 휴게시간을 보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날씨 때문에 일을 못하게 되면 임금에 영향을 받나요?
“팀별로 다릅니다. 옥외 작업을 주로 하는 팀은 날씨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회사에서 대기하거나 조기 퇴근을 하고 일정 부분의 임금을 보장해 줍니다. 그렇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마저도 보장받지 못하고 해당 협력회사에서 강제퇴근으로 처리할 때가 많습니다.”

 

요즘 기사들을 보면 조선업계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조선업이 3D업종이라고 하는데 산재도 많이 있고, 협력업체 노동자들이나 외국인 노동자에게 힘든 일을 전가하고 있어요. 고강도 저임금이다 보니 숙련공이 점점 떠나고 있는 문제가 있고요. 조선업은 일을 가르치고 배우는 수습기간이 필요한데 숙련공이 많이 부족한 구조적 문제가 점점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에요. 또 외국인 노동자들과 한국어로 충분히 소통하지 못하다 보니 서로의 생각을 잘 알지 못해 불안할 때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조선소 업무가 워낙 고강도 노동이 필요하고 상대적으로 저임금이다 보니 내국인 노동자들이 찾지 않자, 회사도 정부도 신경을 쓰지 않아서 점점 노동 환경이 열악해지는 것 같아요.”

 

조선업은 호황이라는 분석들이 나오는데, 일이 늘었나요.
“네, 그러다 보니 선행 작업이 늘고 있어요. 선박이 고객사에 인도될 때까지 16개 공정을 거치게 됩니다. 가공이나 조립, 절단과 선체 구조 정비, 의장 공정과 시운전 식으로 이어지는데 의장 단계는 중간 단계의 일이죠. 아직 체감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수주 실적이 늘어나고 있으니 이제 점점 일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난 여름 경상남도 거제시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대우조선지회에서 박씨가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우리 기자
지난 여름 경상남도 거제시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대우조선지회에서 박씨가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우리 기자

 

 

회사가 나서서 산재를 줄일 노동 환경 조성해야

 

산재를 줄이기 위해서는 어떤 변화와 노력이 필요할까요.
“산업안전보건법에서도 명시하고 있어요. 노동자들이 보호장구를 착용하는 게 기본 책무이고, 예외조항으로는 여건상 어쩔 수 없을 때 최소한의 보호장구를 착용한다고 나와 있는데, 회사쪽에서는 정말 법적으로 최소한의 역할만 한다는 느낌이에요. 노력하는 부분이 적어요. 말로만 산재를 줄이기 위해 캠페인에 나서는 게 아니라 실제 도움이 되도록 보호구 개선 노력도 하길 바랍니다. 외부에서 개인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 더 좋은 장구들을 도입하려는 시도도 없고, 노동자가 수만명이 되다 보니 이런 장구를 갖추는 게 다 비용이어서 적용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비정규직일수록 더욱 위험에 노출이 많이 되고요.”

 

지금과 같은 방식의 노동을 계속 할 수 없게 된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으신가요.
“솔직히 거기까지는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매년 야외 노동을 하고 있고 해가 바뀔 때마다 매년 이상 기후로 역대 최악의 폭염이 예상된다고 할 때 그때 많은 걱정과 우려가 있어요. 온난화가 심해지면 아무래도 지금처럼 일하는데 많은 제한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상기후, 2차 피해인 산재 위험도 올라간다”

 

박씨와의 대화를 통해 불안한 미래가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찔해졌다. 기후위기는 이상기후 그 자체로 인한 1차 피해(건강권, 생명권 등)를 넘어 산업과 노동현장에 2차적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 회사와 노동조합이 갈등할 일은 점점 늘어날 수 있다.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면 기업들은 새로운 성장 전략을 세워야 한다.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인공지능(AI) 작업 도입이 늘어날 수 있고, 노동환경에 필요한 안전 장비 등을 갖추거나 작업 시간 연장 등을 두고 갈등할 수 있다. 특히 사계절이 뚜렷하고 바다를 통해 세계로 뻗어갈 수 있어 조선업 하기 좋은 동남해안의 기후가 달라진다는 건 그 기후 속에서 꽃피운 조선산업의 변화, 재편 등을 동반하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너무 덥고 너무 춥고, 태풍이 수시로 찾아온다면 노동환경은 나빠질 것이고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는 노조의 외침도 거세질 수밖에 없다. 그런 깊고 넓은 파도 속에서 개인의 삶은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기후위기가 박씨와 같은 노동자, 그 가족의 삶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글/사진 | 최우리(한겨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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