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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톺아보기 [2022.07] 인식의 전환: 권리 주체로서의 노인

글 이동우(국가인권위원회 사회인권과)

 

인식의 전환: 권리 주체로서의 노인


 

행복하고 존엄한 노년의 삶

 

한국 사회는 빠르게 나이 들어간다. 현재 고령사회로 진입한 한국 사회는 2025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인구의 급속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인구의 고령화는 우리 모두의 기대수명이 길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한편, 노년의 시기에 신체적, 정신적 기능 저하와 경제적 빈곤 등 일상생활의 어려움에 직면하는 노인이 많아진다는 사실도 내포하고 있다. 이렇듯 한 인간으로서의 삶과 나이가 들어가면서 노화하여 죽음에 이르는 여정은 우리 모두의 현재이자 미래이다. 우리 사회에서 ‘노인은 행복하고 존엄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고민은, 노인인권 실무자로서 ‘노인’과 ‘인권’에 관한 현안을 마주할 때마다 소환하는 물음이다.

 

도시사회학 연구자인 소준철의 저서 『가난의 문법』에서 한 어르신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어떻게든 살아야 했다… 그래도 살아야 했다…”라고 말씀하시고, 이 책의 마지막 구절에서는 “그녀의 노력은 언제 끝나게 되는 걸까. 이 질문 앞에 설 때마다 아득한 기분이 든다”라고 끝맺는다. 한국 사회에서 66세 이상 은퇴 연령층의 상대적 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라는 통계 결과는 더 이상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대개 50세에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한 이후 약 20여 년 동안 주변부 노동시장에 잔류하면서 구직과 실업을 반복하다 70세를 넘겨서야 노동시장에서 완전히 은퇴하는 경향을 보인다. 실질 은퇴연령이나 건강수명 등으로 미루어 볼 때, 노인이 노동에서 자유롭고 건강하게 보내는 기간은 짧으며, 일하거나 구직하는 비율이 높은 수준이다. 또한 장래에 일하기를 원하는 고령자는 증가 추세로, 생활비 마련을 위해 일하기를 원하므로 이는 일하기를 원한다기보다는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인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인구 십만 명당 24.6명1)(2019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11.0명보다 2.2배 높다. 특히 80세 이상의 노인은 67.4명(1,193명, 2019년 기준)으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렇듯 한국사회에서는 연령이 높아질수록 자살률이 증가하는 심각한 상황을 지속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이 발표한 『2021 노인학대 현황보고서 가이드북』에 따르면, 2009년에 2,674건이던 것이 2020년에 6,259건(노인학대 신고 건수 16,973건)으로 두 배 이상 증가하였고, 2021년 기준으로 6,774건(노인학대 신고 건수 19,391건) 발생하여 노인에 대한 학대가 매우 심각한 실정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노인학대 현황은 통계 수치로 발표된 내용이지만, 6,774건의 모든 학대 사례들 속에는 한 분 한 분의 어르신께서 겪는 크나큰 고통과 슬픔이 담겨 있으며, 외부로 알려지지만 않았을 뿐, 학대를 홀로 감내하고 있는 어르신들도 상당수 계시리라 예측할 수 있다.

 

코로나19라는 위기 상황에서 남성이 배우자인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이 증가하였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생활 속 거리두기로 인하여 불가피하게 이동이 제한되어 고립되는 상황에서, 노인에 대한 폭력이나 방임 등 학대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졌다. 디엔 케이타(Diene Keita) 유엔 인구기금(UNFPA) 부총재는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 이후에 가정폭력이 증가세로, 위기 안의 또 다른 위기가 자라나고 있다고 언급하였다.

 

 

 

코로나19로 인한 노인의 취약성 심화

 

현재 우리는 아직 종식되지 않고 있는 코로나19 재난에 맞서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누구도 차별하지 않지만, 그 영향력은 차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가장 많은 사망자는 다름 아닌 노인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 고위험군 고령자 기준을 65세 이상에서 60세 이상으로 강화하였다. 코로나19 위협은 노인이 가진 취약성을 선명하게 드러냄과 동시에 노인의 취약성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유엔에서 2020년 5월에 발표한 『코로나19와 노인인권』 정책보고서에 의하면, 코로나19가 노인의 생명과 건강, 행복, 노년의 삶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한다고 우려한 바 있다. 유엔 사무총장은 이 보고서에서 노인들이 직면하는 다양한 위험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감염병 퇴치 과정에서 노인의 인권 문제도 함께 해결함으로써 코로나19의 위협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인권에 기반한 접근의 필요성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 사회에서 노인은 빈곤과 자살, 학대 등으로 인하여 노년의 시기에 존엄한 일상적 삶을 영위하지 못하고 있으며 특히,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돌봄 공백과 높은 치명률 등으로 노인인권의 취약성이 더욱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무엇보다도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노인은 일상적으로 위험에 노출되어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여 있다. 이에 정부는 취약계층 노인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안전망을 점검하고 강화할 필요가 있으며, 이 과정에서 인권은 소중한 가치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코로나19 재난의 확산과 장기화로 인하여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인권이 가장 중요하고도 우선이 되는 가치라는 사실을 되새기며 살아가고 있다.

 

「대한민국헌법」은 제10조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규정하고 있으며, 「노인복지법」 제2조 제1항에서는 후손의 양육과 국가 및 사회 발전에 기여해 온 노인이 존경받으며 안정된 생활을 보장받아야 함을 기본이념으로 제시하고 있다. 코로나19 대응과 회복 과정에서, 우리는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에 초점을 맞추어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코로나19에 특히 취약한 노인을 보호하고,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포용적 대응이다. 정부와 기업, 시민사회 등 모두가 함께 연대할 때, 코로나19로부터 우리의 소중한 가족과 이웃, 그리고 지구촌 다양한 생명의 권리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유엔 노인권리협약 성안을 위한 진전

 

국제사회는 1982년에 제1차 세계고령화대회를 개최한 이후, 1991년에는 ‘노인을 위한 유엔 원칙’을 발표하였으며, 2002년에 제2차 세계고령화대회에서 ‘마드리드 고령화 국제행동계획(MIPAA)’을 채택하였다. 그리고 2010년에는 제65차 유엔총회 결의안에서 ‘고령화 실무그룹(OEWGA)’을 구성하여 현재까지 노인의 인권 이슈에 관하여 지속적으로 논의를 이어오고 있다. 유엔 고령화 실무그룹은 올해 제12차 회의에서 노인권리협약 성안의 실무를 맡을 ‘지역 간 중심그룹(Cross-Regional Core Group)’ 구성을 결의하여 현재 진행되고 있다.

 

유엔 인권이사회(UNHRC)는 2021년 제48차 회기에서 『노인인권 보호 및 증진에 관한 국제법상 규범적 기준과 의무』 보고서를 작성하여 제49차 회기에 제출할 것을 인권최고대표에게 요청하였다. 이에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노인인권 증진과 보호에 관한 국제법상 규범적 기준과 의무에 대한 분석자료를 제공할 목적으로 해당 보고서를 제출하였는바, 노인에 관한 포괄적이고 일관되며 통합적인 인권 체계를 채택하기 위해 신속히 움직여야 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하였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에서는 이 보고서를 기반으로 다양한 이해관계자(인권 전문가 및 회원국 대표, 조약기구 및 특별절차, 유엔과 지역 인권보호 메커니즘, 학계, 노인인권독립전문가, 국가인권기구, 노인을 비롯한 다양한 연령층의 의미 있고 실질적 참여를 포함한 시민사회의 참여) 회의를 거쳐, 노인인권 관련 국제인권법상 간극과 분산을 해결하기 위한 권고를 담은 요약본을 제51차 인권이사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 고령화 실무그룹

 

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Global Alliance of the National Human Rights Institutions: GANHRI)은 2016년에 ‘GANHRI 고령화 실무그룹’을 설립하였다. 이 실무그룹의 의장기구를 맡아온 대한민국 국가인권위원회는 국가인권기구들 내 노인인권 관련 활동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오고 있는데, 전략계획의 수립과 이행, 유엔 고령화 실무그룹에 의장 명의로 의견서 제출, 그리고 최근에는 노인권리협약의 성안을 위한 초안 마련 추진단을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나아가 11월에는 노인권리협약 성안에 기여하기 위한 국가인권기구들에 의한 초안을 마련하고자 국제 콘퍼런스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 콘퍼런스에서는 국가인권기구, 정부, 국제기구, 지역기구, 시민사회 활동가 및 학계 연구자 등 인권 공동체 핵심 이해관계자들이 다수 참여하여 노인권리협약 초안의 핵심 조항에 대하여 토론할 예정이다.

 

 

인식의 전환: 연령주의(Ageism)를 넘어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고 존엄한바, 이 가치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훼손되거나 폄하되어서는 안 될 것이나, 여전히 수많은 노인은 빈곤과 자살, 학대, 혐오 및 차별 등을 겪고 있다. 특히,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연령주의(Ageism)2)가 노인혐오와 노인범죄로 이어지는 사례들이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 이처럼 나이에 근거한 차별이 만연함에 따라, 연령주의는 또 다른 형태의 차별을 가중시키고, 모든 측면에서 노인의 사회참여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연령주의는 실제로 나이 또는 ‘나이 들었다’는 인식에 기반한 고정관념, 편견, 증오발언을 포함한 차별적 행동이나 관행을 수반할 수 있고, 다양한 차원에서 암묵적으로 또는 명시적으로 표현될 수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3)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인을 ‘시혜 또는 정책의 대상’으로 여겼던 시각에서 벗어나 ‘인간 존엄성 및 기본적 인권 보장’이라는 인권의 눈과 감수성으로, 노인을 ‘권리를 가진 주체’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권리 주체로서의 노인

 

한국사회는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이 다른 국가에 비해 높은 실정이고, 노인 간 돌봄 및 황혼육아, 학대, 고독사, 일할 권리, 세대 간 소통의 문제, 존엄한 죽음 등 다양한 노인 관련 인권 현안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정책의 변화와 법령의 제·개정을 넘어 포괄적인 접근, 즉 권리에 기반한 고령화에 대한 접근이 필요하다. 구체적인 실행 방안으로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궁리해 볼 수 있다. 첫째, 노인 스스로가 자신의 권리를 향유할 수 있도록, 노인 당사자를 위한 교육(이른바 ‘노인의 권리 찾기’라고 할 수 있음)이다. 둘째, 노인인권 현황과 문제점 등을 공론화하고 당사자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도록, 노인 단체와 전문가 등 민간부문의 역량 강화와 이를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 셋째, 노인인권의 중요성과 심각성을 환기하고, 노인인권의 보호·증진을 위한 방안을 논의하는 각계에서의 공론장이 필요하다. 넷째, 노인이 겪는 다양한 문제와 관련하여 먼저 공공의료 서비스와 돌봄서비스, 그리고 소득지원에 관한 제도적 기반의 구축 등 노인을 위한 보편적인 사회보호 최저선을 설정하여야 할 것이다. 이는 노인이 갖는 여러 권리 중 생명권 및 건강권에 관련된 것으로, 노인 빈곤의 해소와 기본적인 생존에 결부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존엄하고 행복한 일상적 삶을 보장하기 위한 실효적 방안은 권리 주체로서의 노인이 목소리를 내고, 이를 제반 정책에 반영하는 기본적인 토대를 마련하는 것부터가 그 시작일 것이다.

 

※ 편집자 주 : 위 원고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공식 입장이 아닌, 노인인권 실무자의 소견임을 밝힙니다.

 

1) 보건복지부·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2022 자살예방백서』 국가별 연령구조 차이 보정을 위해 OECD 표준인구로 계산한 연령표준화 값 활용
2) 연령을 이유로 개인의 기회를 박탈하거나 소외시키는 사회적 이념 및 행위를 뜻함
3) 세계보건기구 『연령주의 보고서』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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