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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여다보기 [2022.03] [기후위기 속의 인권] ② 인권이 배제될 때 재앙은 배가 된다

글 강수돌(고려대 융합경영학부 명예교수)

 

「인권」은 기후위기로 인해 소외당하거나 발생할 인권 침해의 오늘과 내일을 직시하고 경각심을 높이고자 ‘기후위기 속의 인권’ 연재를 기획하였다. 빠른 이해를 돕기 위해 강수돌 교수가 선택한 대중영화를 통해 기후위기 사례를 알아보았다. 「인권」은 독자와 함께 2022년 기후위기와 인권위기를 넘어서는 변화와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편집자 주]

 

② 인권이 배제될 때 재앙은 배가 된다

 

영화 <투모로우>(감독 롤랜드 에머리히)는 2004년에 개봉했는데, 원제(The Day After Tomorrow)가 암시하듯 그냥 ‘내일’이라기보다 인류의 미래를 다룬다. 이미 18년이나 지났건만 과연 이 영화를 보고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제대로 깨닫고 일상 속에서 작은 변화라도 실천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물론 영화는 영화다. 그러나 영화랍시고 그냥 넘길 일은 아니다.

 

영화의 시작은 남극 대륙의 빙하 붕괴! 기후위기의 최대 상징인 지구온난화 탓이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빙하 붕괴로 끝나지 않는다. 무수히 많은 얼음덩어리가 바닷속으로 녹아들면서 물이 급랭하고 해류 방향이 변하며 폭풍과 빙하기가 지구를 덮친다.

 

물론 이런 사태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경고는 수없이 반복되었다. 문제는 그러한 과학자나 선지자들의 경고를 사람들(정치가, 경제인, 보통 사람들)이 ‘설마, 설마’하며 예사로 넘긴 것! 아니면 다른 위기들처럼 기후위기 역시 기술적 해법으로 얼마든지 해결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막상 대규모 재앙이 들이닥치면 각자 살아남고자 앞을 다툰다.

 

과연 인류는 기후위기 내지 기후참사라는 재앙을 지혜롭게 예방, 극복할 수 있을까?

 

 

선지자들의 통찰에 대한 체계적 무시

 

여러 방면의 학자나 선지자들이 나름 진지한 연구와 분석, 통찰로 수많은 재앙의 경고를 해왔음에도 엘리트 기득권층들과 보통 사람들 대다수는 이를 체계적으로 무시해 왔다. 이는 학자나 선지자들의 노고에 대한 배은망덕일 뿐 아니라 결국은 그들의 인권, 나아가 인류 전체의 인권을 말살하는 결과를 낳는다.

 

영화 <투모로우>에서 기상학자인 잭 홀 박사는 남극에서 빙하 코어를 탐사하던 중(기후연구, 해양대기층, 샘플 채취 등) 얼음이 갈라져 골짜기가 생성되는 바람에 죽을 뻔했다. 그는 지구에 참사가 올 것을 직감, UN국제회의에서 지구의 기온 하락에 관한 연구발표를 한다. 급격한 지구온난화로 인해 극지대 빙하가 녹아 바닷물이 차가워지고 소금 농도까지 낮아져, 해류 흐름의 변화로 폭풍 등 기상이변이 오고 결국 빙하기가 온다는 경고였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비웃음만 당하고 상사와 갈등까지 빚는다. 미국 부통령 레이먼드 벡커 역시 그를 불신한다. 잭은 상사와의 논쟁과 갈등으로 스트레스가 높아져 퀴즈대회 참가를 위해 뉴욕으로 가는 아들 샘을 배웅하는 것도 잊는다. 그렇다. 연구자 역시 사람인 이상 자신의 인권(학문의 자유, 양심의 자유)이 침해됐다고 느낄 때 더는 이성이 작동하지 않고 분노와 울화에 사로잡힌다.

 

그 사이 잭은 해양 온도가 13℃나 떨어졌다는 소식을 접하고 자신이 예견한 빙하시대가 곧 닥칠 것 같아 두려움에 떤다. 원래는 그조차 재앙이 그토록 빨리 일어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이미 곳곳에서 재앙이 발생했다. 예컨대, 일본에서는 큰 우박이,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대형 허리케인이 LA 전체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시베리아와 호주에서도 이상기후가 보고되었다.

 

여기서도 우리는 현재 삶을 틀 짓는 정치경제 시스템이 기후위기(재앙) 앞에서 얼마나 변화를 두려워하는지 잘 알게 된다. 과학자 잭 홀의 진지한 연구와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경고가 그 상사에 의해 무시되고 결국엔 세계의 학문 공동체나 정치경제 엘리트들에 의해 무시된다. 이로써 인류는 기존의 정치경제 시스템을 차분하게 혁파할 기회를 거듭 놓친다. 요컨대, 위기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 즉 현실의 부정, 변화의 부정이 인권의 부정까지 초래한다.

 

 

기후 난민의 생존권과 보편 인권

 

주인공 잭 홀은 곧 닥칠 재앙으로부터 아들을 구하고자 나서지만 백악관으로부터 긴급 연락을 받는다. 잭은 브리핑을 통해 현재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는 지구 북부에 있는 사람들은 너무 늦었기에 포기하고 우선 중부지역에 있는 사람부터 최대한 많이 멕시코 국경 아래인 남쪽으로 이동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사람들의 반발과 저항을 일으킬 것이기에 정치가, 특히 관료들은 거부한다. 이에 잭 홀은 또 갈등을 겪는다. 이미 이동을 시작한 사람들조차 만만치 않다. 이들은 일대 혼란에 휩싸이고 세상은 아수라장이 된다.

 

그 시각 영국에서는 여왕을 태우러 가려던 헬기가 태풍의 눈을 지나다가 갑자기 얼어버린다. 추락한 헬기의 문이 열리자마자 그 조종사들도 동결된다. 재앙은 이미 현실이었다.

 

잭 홀의 아들 샘과 친구들이 탄 비행기 역시 이상 난기류를 겪는다. 따뜻했던 인도에도 일본에 내렸던 야구공만 한 우박과 같은 눈이 갑작스럽게 내린다. 북유럽에선 24시간 내내 폭설이 쏟아지고 기온 급강하로 비행기 연료가 동결되면서 피해가 속출한다.

 

퀴즈대회에 가던 아들 샘과 친구들은 간신히 뉴욕에 내렸으나 택시로 이동하던 중 길이 막혀 차에서 내려 걷는다. 하늘엔 엄청난 새떼가 한 방향으로 이동하고, 동물원의 동물들도 불안과 공포에 떨며 울부짖는다. 이미 LA는 토네이도(폭풍)로 폐허가 됐다.

 

뉴욕의 샘과 친구들 역시 폭풍우가 닥치면서 온 거리가 물에 잠겨가자 가능한 한 높은 지대를 찾는다. 그나마 공공도서관이 현실적 대안이었다. 뉴욕은 자유의 여신상까지 잠길 정도로 쓰나미가 덮친다. 영화 <해운대>에서처럼 파도가 밀려와 높은 건물과 건물 사이에 난 도로를 집어삼킨다.

 

여기서도 분명하듯, 지구에 대참사가 발생할 때, 과연 누가 구제되고 누가 포기되는가? 이 질문 앞엔 정답이 없다. 이미 사태는 심각해 되돌릴 수 없다. 이 상황에서 어떤 답을 내놓아도 비난과 저항! 그러나 어쩌랴? ‘모두’ 살자며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수많은 학자와 선지자들이 경고를 반복하고 반복했건만 막상 최후의 순간까지 거의 무시된 것을! 특히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체제 속에서 돈벌이하며 살아온 지난 수백 년의 자본주의 시스템을 만들고 유지한 정치경제 기득권층, 그리고 그 시스템에 적응하여 무난히 사는 보통 사람들, 이 모두는 재앙과 파국의 경고에 귀와 눈을 막았다. 물은 엎질러졌는데, 누구의 인권은 소중하고 누구의 인권은 포기될 수 있나? 그나마 영화 <투모로우>가 당장 현실이 아닌 게 행운!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평소에 미국이 천국으로 그려지고 멕시코가 지옥처럼 그려졌지만, 새로운 빙하기라는 참사 앞에 미국이 지옥이 되고 멕시코가 천국으로 뒤바뀌는 장면이다. 이를 좀 달리 보면, 미국이라는 인공 문명은 지옥이고 따뜻한 햇살 가득한 멕시코의 자연 문명이 오히려 천국이다. 물론, 현실은 흑백논리와 다르다. 바람직한 모습은 비록 우리가 인공 문명을 만들더라도 자연 문명을 존중하는 토대 위에서 조심스레 해나가는 것! 보편 인권을 구현하기 위해서라도 생명의 원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② 인권이 배제될 때 재앙은 배가 된다

 

기술주의적 해법과 인권

 

영화 <투모로우>는 잭 홀로 상징되는, 지구과학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준다. 스코틀랜드의 해양학자 테리 랩슨 교수나 미항공우주국 NASA의 기상학자 재닛 토카다 역시 잭 홀의 이론과 예측에 공감한다. 그러나 이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학자나 정치·경제적 엘리트들은 잭 홀의 입장을 부정한다.

 

잭 홀 등에 따르면 지구의 북반구에서 발생한, 허리케인 같은 대형 폭풍이 캐나다, 스코틀랜드, 시베리아 등 세 갈래로 나뉘어 북반구를 강타하면서 새로운 빙하기를 초래한다. 그 슈퍼폭풍은 무려 마이너스 100℃의 얼음폭풍으로, 세상 만물을 순식간에 얼려버릴 정도다. 이런 속도로 태풍이 성장하면 7~10일 후엔 3개의 태풍이 북반구 전체를 빙하 덩어리의 ‘설국’을 만든다. 물론, 이는 시뮬레이션이지만, 이미 영화 속에서는 현실!

 

이런 흐름을 보면 잭 홀 박사로 상징되는 과학자들의 분석과 예견이 대체로 옳았다. 물론, 수많은 과학자의 입장이나 이론들은 실로 다양하고, 그 누가 옳고 타당한지는 시간이 지나 봐야 안다. 마치 어떤 벽시계가 시간을 알릴 때 가령 9시인지 알려면 아홉 번째 종이 울리고 열 번째도 울리는지 아닌지 기다려봐야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러나 영화 <투모로우>에도 잘 묘사되듯, 기후변화 내지 기후위기의 실제 진행 경과는 과학자들의 예측마저 어긋나게 한다. 잭 홀 박사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빙하기 도래를 예측했지만, 당시만 해도 참사가 금세 올 것은 아니라 봤다. 하지만 현실은 초고속이었다. 예측 불허! 게다가 사람들의 만성화한 불감증과 현실 부정, 그리고 이해관계나 두려움으로 인한 행위 무능력 등은 그나마 기본적으로 옳았던 과학자들의 예견마저 무력화했다. 나아가 기후참사라는 대재앙 앞에서 수십억 인구가 피난을 간들 얼마나 많이, 얼마나 빨리 가겠는가?

 

더 심각한 것은, 인류 전반이 기후위기와 관련해 그 근본 대안을 논하지 않고 대체로 기술주의적 해법만 찾으려 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기술주의적 해법이란 대체로 자본이나 권력의 이해관계와 일치하는 방향 속에서의 해법이기에 보편적 인권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근원적 한계가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기술주의적 해법이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라며 별로 저항하지 않는다. 그 가장 대표적인 예가 영화 <설국열차>에 나오듯 뜨거워진 지구를 식히기 위한 인공냉각제(CW-7)다. 마치 비가 오지 않을 때 인공 강우제를 비행기로 살포하듯, 아니면 날씨가 매우 더울 때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듯 말이다. 또, 유전자조작식물(GMO)만 남기고 모든 잡초를 일거에 제거하는 ‘라운드업’ 제초제처럼…. 이렇게 과학이나 기술로 포장된 인공적 해법은 결국 자본의 새로운 상품에 불과할 뿐, 지구 온난화나 기후위기, 풀 문제 등을 근본적으로 풀진 못한다.

 

여기서 우리는 영화 끝부분의 한 인터뷰를 상기한다. 따뜻한 남쪽에 피신해 있던 미국 부통령이 대통령 대신 텔레비전 인터뷰를 한 장면이다. 그는 말한다. “인간이 자연 앞에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새삼 깨달았다. 그간 인간이 오만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자연 앞에 인간은 무기력하다. 이제 세계는 하나가 돼야 한다.” 이런 메시지!

 

만일 우리가 이 메시지를 진정성 있게 이해한다면, 그간 자본이나 과학기술의 이름으로 자연과 생명에 가한 폭력적 행위를 전면 중단하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생명과 평화의 관계로 재설정해야 한다.

 

영화 <투모로우>는 인간의 오만한 패러다임이 결국 어떤 결과를 낳는지 잘 보여준다. 만일 우리가 그 끝을 안다면, 지금부터라도 근본적인 경로 변경을 시작해야 한다. 죽음이 아니라 삶을 추구한다면 말이다. 그래야 우리에겐 미래가 있다.

 

강수돌 고려대 명예교수는 기업과 공공부문 노사관계, 이주노동자의 삶과 운동, 일중독과 건강 문제, 중독 시스템 문제 등을 연구했고, 주경야독을 하며 학생과 시민들을 위한 인문학 특강을 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강수돌 교수의 ‘나부터’ 교육혁명』, 『함씨네와 함께 하는 ‘나부터’ 밥상 혁명』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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