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 [2022.01] 아픈 산

노순택(사진작가)

 

아픈 산

 

에베레스트산이 아니다. 백두산도 한라산도 아니다.
사진은 정확함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실은 모호함을 보여준다. 크기를, 보여줄 듯 감춘다.
이 산의 왜소한 웅장함을 알고 싶다면 사람을 세우라. 상상 속에 사람을 작게 세우면 산은 거대해진다.
크게 세우면 작아진다. 사실은 뭘까. 사람은 콩알만 하다. 고로 거대하다. 이 웅장한 산을 너와 내가 쌓았다니, 우리는 얼마나 위대한가. 신문 방송은 이것을 “무너졌다” 말하지만, 틀렸다, 쌓아 올렸다.
우리가 쌓아 올린 이 찬란한 금자탑. 일하는 사람들의 목숨을 갈아 쌓아 올린 눈부신 황금탑.
눈을 크게 뜨면 보인다. 망가진 손가락과 허리와 머리와 발목이, 그을린 살결이. 수은중독으로 죽은 열다섯 살 소년노동자 문송면이 저기 있다. 홀로 밤샘노동하다 컨베이어벨트가 집어삼킨 청년노동자 김용균이 거기 있다.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전동차에 치인 김군이, 배달의 민족임을 증명하기 위해 달리고 달리다 문래동 고가차도에서 바스러진 50대 가장의 삶이 여기저기에 있다. 그러므로 이 산을 불타올라 무너져 내린 초대형 물류창고라 부르지 말라. 일하다 다치고, 일하다 죽은 이들이 쓰러져 쌓인, ‘산업으로 빛나는 재해의 금자탑’이 이토록 높아 가는데, “무너졌다” 떠들고 “붕괴됐다” 외치는 게 온당한가.
지난해 2천 명의 노동자가 일하러 나갔다,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지금도 흘러나온다. 빨리빨리 쌓으려다 무너진 광주의 고층아파트 잔해에서 노동자의 몸 일부가 발견됐지만, 붕괴위험 때문에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는 속보 아닌 비보. 아픈 산이 높아간다.


글·사진 노순택(사진작가)
길바닥에서 사진을 배웠다. 배우긴 했는데, 허투루 배운 탓에 아는 게 없다. 공부해야겠다 마음먹지만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 몰라 헤맨다. <분단의 향기>, <얄읏한 공>, <붉은 틀>, <좋은 살인>, <비상국가>, <망각기계> 등의 국내외 개인전을 열었고, 같은 이름의 사진집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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