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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2021.12] <성덕>(오세연 감독) 리뷰 -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팬이었다

글 강유가람

 

<성덕>(오세연 감독) 리뷰 -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팬이었다

 

안녕, 부끄러운 내 과거

 

다큐멘터리 <성덕>의 제목은 ‘성공한 덕후’의 줄임말이다. 일본어 ‘오타쿠’에서 유래한 ‘덕후’라는 표현은 한 분야의 팬, 특정 분야의 전문가에 이를 정도로 열중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감독은 스스로를 성덕이라고 했다. 그는 한 가수의 열렬한 팬이었는데 좋아하는 가수의 눈에 띄고 싶어 한복을 입고 팬싸인회에 가서 실제로 그에게 예쁘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방송에도 출연하여 그에 대한 애정을 마음껏 표출했던 ‘성공한 덕후’였다.

 

하지만 그 가수가 성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간 정준영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결국 감독은 성공한 덕후가 아니라 실패한 덕후가 되었다. 영화는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내가 한 시절을 바쳐 열정적으로 좋아했던 연예인이 범죄자가 되는 순간 느꼈을 자신의 혼란과 충격의 실체에 직면하기 위해 감독은 카메라를 든다. 그리고 다시는 누군가의 팬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비장하게 선언하며 영화는 시작된다.

 

그런데 ‘한때 정준영의 팬이었다’는 것을 밝히는 것조차 부끄러워지는 순간에도 여전히 팬으로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감독은 궁금증에 휩싸인다. 감독은 자신이 바친 시간과 애정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같이 ‘덕질’을 했던 친구들을 찾아가기로 한다. 그렇게 감독이 영화를 찍는다고 하자, 점차 친구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하나 둘 씩 털어놓기 시작한다. 팬이기를 멈춘 사람, 여전히 팬이기를 선택한 사람의 마음을 궁금해 하면서 감독은 진지한 탐구를 해나간다. 제일 먼저, 화려했던 덕질의 흔적인 굿즈 장례식을 거행하지만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다.

 

 

나를 성장시켰던 원동력

 

최근 인생 최대의 덕질을 하고 있다는 지인은 이름이 좀 알려진 남자 아이돌 팬싸인회에 가려면 적게는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몇백만 원까지 투자해야 한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소비 자본주의 사회에서 팬들의 지갑이야말로 스타시스템을 뒷받침하는 토대이기 때문에 그 산업은 점점 더 고도화되고 있다. 물론 직접적인 구매로 이어지지는 않더라도, 팬덤은 그 자체로도 가장 큰 스타시스템의 원동력이다. 엔터테인먼트 사업들은 팬들의 관심과 응원을 조직적으로 관리하고, 그를 통해 이익을 얻는 시스템을 구축해왔다.

 

그런데 사회에서는 이런 여성들의 집단적인 팬덤 활동과 경험을 비하하곤 한다. 팬덤 안에서 열렬하게 활동하는 여성들에 대한 비하적인 시선은 제일 잘 드러나는 표현이 ‘빠순이’이다. ‘빠순이’이라는 용어의 역사는 생각보다 유구한데, 1990년대 중반 이후 열광적이었던 서태지 팬덤을 다룬 김이승현, 박정애의 글에 따르면 ‘빠순이’는 성산업에 종사하는 여성을 비하하는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1960년대부터 존재해왔던 전통적인 여성혐오적 표현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성주의 문화 연구자들은 오히려 여성들의 팬덤문화와 팬덤 자체에 대한 비하적인 시선을 뒤집어 여성들의 문화행위를 적극적으로 해석해왔다. 동방신기의 중년여성 팬덤을 연구한 오자영, 팬코스에 대한 팬덤을 연구한 신라영에 따르면 여성들이 경험하는 팬덤문화는 정체성에 대한 탐험, 자신에 대한 임파워링, 새로운 관계망을 경험하면서 스스로의 능력치를 업그레이드하는 장으로 긍정적으로 기능한다. 성덕의 감독 역시 스타가 자신에게 해준 말을 목표삼아 전교 1등을 할 만큼 공부도 열심히 하고, 원하던 대학에도 합격하는 등 억압적이고 갑갑한 학창 시절을 견딘다. 자신의 우상과 닮고 싶은 욕망은 삶에 대한 원동력으로 작동하게 된다. 감독의 친구도 덕질을 하면서 만나게 된 감독이 멋져 보였고, 감독처럼 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사회적인 비하에 시달리는 팬덤 문화이지만, 여성들은 그 안에서 끊임없이 자기 발전을 실천하고 있으며 수동적인 수용자가 아닌 적극적인 문화 생산자로 자기 자리를 만들어 왔다. 팬덤의 네트워크는 단순히 연예인을 선망하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망 속에서 새로운 나에 대한 열망의 장으로서 작용하는 것이다.

 

 

<성덕>(오세연 감독) 리뷰 -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팬이었다

 

내가 키운 범죄자들?

 

그러나 K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소비 주체이자, 새로운 정체성을 지닌 여성 팬들에게도 해석 불가해한 일이 종종 일어난다. 여성 팬덤을 바탕으로 인기, 부 그리고 명예를 유지해왔던 남자 연예인들의 성범죄 사실은 여성들에게 복합적인 감정을 일으킨다. 자신의 돈과 시간이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을 지원하는 데 사용되었던 사실은 견디기 힘든 일이 된다. 감독 역시 그 견디기 힘든 시간을 어떻게든 해석해보고자 한다. ‘응원을 하는 것만으로도 그의 범죄를 묵인’하는 것이 될 수 있다는 감정이 들자, 자신의 시간이 송두리째 사라진 것 같다. 출연자 중 한 명은 자신이 좋아한 노래가 자신의 인생의 한 부분을 함께 보낸 친구들과의 인권추억을 장식하는 매개체였기 때문에, 인생의 한 부분이 망가진 것 같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좋아했다는 이유로 이런 감정들을 겪은 팬들은 스스로가 간접적인 피해자가 된 것 같다고 이야기 한다. 자신의 우상에 대한 분노는 결국 자신에 대한 분노로 이어진다.

 

분노와 부끄러움을 한참 이야기하던 영화는, 이 지점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자신이 해왔던 팬 활동이 피해 여성에게 어떤 의미였을지 성찰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하면서 이 사건을 파헤치고 있는 자기 자신에게로 카메라의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감독은 누군가를 열정적으로 좋아했던 만큼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을 공격 혹은 비판한다고 생각한 사람에 대한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었던 시절로 돌아간다.

 

사건이 밝혀지기 3년전 쯤 정준영의 관련 사건을 처음으로 보도했던 기자는 큰 공격을 받았다. 당시 감독은 그 기자가 자신의 영달을 위해 사건을 이용했다고 생각했다. 기나긴 성찰 끝에 감독은 이 사건 보도를 한 기자에게 가서 사과를 하기까지 이른다. 자신의 옛 일기에 나쁜 사람이라고 적혀있던 사람에게 가서 자신의 과거의 행동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용기. 감독은 처음에 영화를 만드는 것 자체가 어쩌면 피해자에게 상처를 안겨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고민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스스로의 과오와 부끄러움을 내보이는 진심은 피해자들에게 보내는 새로운 연대의 메시지로 보인다.

 

 

가해자의 곁에서

 

사실 이 영화는 연예인 팬덤에 대한 이야기로만 볼 수 없다. 이것은 정치인이든, 지인이든, 누구라도 따르고 지지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해야 하고, 공감할 이야기이다. 감독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 집회에 가서 카메라에 담은 지지자들의 뒷모습은 왠지 모르게 측은하게 느껴진다. 자신이 지지했던 사람이 범죄자라는 사실에서 오는 혼란이나 성찰을 부정하고, 그 사람의 곁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비난하기보다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감정이입을 하는 감독의 시선은 솔직하기 그지없다. 그 순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철저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감독을 바라보면서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나 역시도 나 자신에 대한 연민으로 어떤 사건들의 방조자가 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물론 모든 개인 대 개인 관계를 가해와 피해의 구도에서 성찰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가해가 일어나는 배경과 문화에 대한 분석과 성찰이 사회적으로 더 필요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가해자를 사랑하기보다 가해자를 사랑했던 자신을 부정할 수 없어서, 가해자의 곁에 남거나 혹은 가해자를 묵인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나의 추억과 시간을 부정하는 것은 분명 모두에게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일일 것이다. 내 정체성이 부정당하고, 사라질지도 모르는 불안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고통의 시간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내며, 나 자신이 그 가해자와의 인연과 맺고 있던 관계를 바탕으로 타인과의 관계에서 있었던 일을 판단하는 것을 멈출 수 있다면, 새로운 세상은 도래한다. 거기서 새로 시작하면 된다는 것이 이 영화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위로이다.

 

[1] 김이승현, 박정애(2001), 「빠순이, 오빠부대, 문화운동가?-서태지 팬덤 이야기」, 『여성과 사회』 제13호, 창작과 비평사

[2] 오자영(2006), 「30대 기혼 여성의 팬덤과 나이의 문화정치학」 ,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 청구 논문

[3] 신라영(2003), 「팬코스」 활동을 통해 본 10대 여성의 주체 형성 과정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 청구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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