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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판은 우연한 실수가 아닌 우리 모두의 실패-

기자의 눈 [2021.09] 문제는 사법 시스템
-오판은 우연한 실수가 아닌 우리 모두의 실패-

글 김원진(경향신문 기자)

 

브랜던 개릿의 <오염된 재판>과 <허위 자백과 오판>

 

문제는 사법 시스템

 

미국 듀크대 로스쿨 교수인 브랜던 개릿의 <오염된 재판>에는 250명의 오판 피해자가 등장한다. 경찰의 잘못된 수사로, 검찰의 무리한 기소로, 조작된 증거로, 허위 자백으로, 오류가 담긴 목격자의 증언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이들을 추적했다. 모두 미국 사례로, 250명은 평균 13년을 감옥에 있어야 했다. 80명은 종신형이었고 17명은 사형선고를 받았다. 사형 집행 직전에 무죄가 밝혀진 이들도 있었다.

 

 

책 <허위 자백과 오판>은 사법체계에서 나온 오판 사례의 다수가 허위 자백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허위 자백과 오판>에서 소개하는 연구 사례를 보면, 1900년에서 1987년 사이 미국에서 법정형이 사형인 사건 중 350개의 유죄판결이 잘못됐다. 이중 94개 사건(14%)에서 허위 자백이 사형 선고의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사법시스템의 ‘오판’은 사형제를 반대하는 오랜 논거 중 하나다. <오염된 재판>과 <허위 자백과 오판>은 사법체계에서 왜 오판이 발생하는지 구조적 원인을 짚는다. <오염된 재판>은 “오판은 우연한 실수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실패”라고 말한다. 오판은 결국 시스템의 문제라는 의미다.

 

 

과학수사의 맹점

 

‘결함 있는 과학수사’는 오판의 한 원인이다. <오염된 재판>은 “오판 피해자 사건에서 법과학은 흔하게 사용되지만 완벽하게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준다”(149쪽)고 말한다. 저자는 주요 오판 사례 153건에서 과학을 표방하지만 신빙성이 떨어지는 기법이 사용됐다고 주장한다. 체모비교법, 혈청학(ABO형 구분), 치흔 비교, 족적 비교, 음성 비교, 지문 비교가 어떻게 오판 피해로 이어졌는지 소개한다.

 

<허위 자백과 오판>에서는 거짓말 탐지기가 과학 수사의 대표 사례로 등장한다. 미 수사기관이 과학적 이미지를 얻고 최종적으로 자백을 얻어내기 위해 고안했다. 저자는 “타당성이 전혀 없지는 않을지 몰라도, 잘못된 전제에 기초한다”고 지적한다. “인간은 거짓말을 할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리적으로 뚜렷이 구별되는 방식으로 반응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거짓말을 측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측정할 수도 없다”는 이유에서다. <허위 자백과 오판>에서 소개하는 연구는 결백한 이들이 거짓말 탐지기를 통과하지 못하는 비율이 50%에 달한다고 밝힌다.

 

다시 <오염된 재판>. 과학수사의 오류도 결국 과학으로 밝혀진다. DNA 검사 기법이 발달하면서 2000년을 기점으로 오판 피해자가 연이어 확인되기 시작했다. <오염된 재판>에서 다룬 250명의 오판 피해자는 모두 DNA 검사로 항소심 혹은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이들이다. 이중 112건에서 DNA 검사로 진범이 밝혀졌다. 아마 과학이 발전해 한계를 뛰어넘으면, 더 많은 오판 피해자와 진범이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

 

DNA 검사도 만능은 아니다. DNA 검사 결과를 재판부가 무시하거나 DNA 검사 결과를 곡해할 때 여전히 오판 가능성이 존재한다. DNA 검사는 “신빙성 있는 증거라도 법정에서 과학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방식으로 제시되거나 실험실에서 잘못 해석될 경우 잘못된 유죄판결을 유발할 수 있다”(168쪽)는 점을 보여준다.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오류다.

 

 

문제는 사법 시스템

 

개혁의 이유

 

오판 피해자는 허술한 과학수사만이 아니라 검·경의 수사 과정에서, 재판 과정에서, 목격자의 증언에서, 수감자의 제보에서도 나온다. 결국 시스템의 실패고, 구조의 문제다. <오염된 재판>과 <허위 자백과 오판>은 모두 사법 시스템 개혁을 이야기한다. 피의자 심문 절차와 법과학 개혁, 수감자 제보 남용 방지나 검찰 개혁 등이 제시된다. 미국 기준으로 제시된 개혁 방법이지만 한국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염된 재판>에는 “중범죄 판결의 오류율이 0.027%라는 이야기는 성공률이 99.973%”(고 앤터닌 스캘리아 전 미 연방대법원 대법관)라는 반론이 소개된다. 오판은 극소수에게만 해당되는 ‘이례적 사례’라는 취지다. 드러난 오류가 0.027%일 뿐, 드러나지 않은 오판은 더 많을 것이다. “무고한 사람에게 유죄판결을 하는 것이 비행기 추락사고급임에도 이를 조사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385쪽)는 지적처럼 오판 사례 발굴에 적극적인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오판 이후 ‘0.027%’는 끔찍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오염된 재판>이 소개하는 오판 피해자 250명은 DNA 검사로 결백을 입증 받는 데까지 평균 15년이 걸렸다. 출소한 뒤에도 대부분 “자신들이 감옥에 있었던 이유를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사람들은 해명을 잘 믿어주지 않는”(370쪽) 현실을 겪는다. 경제적 보상조차 제대로 못 받거나,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오판 피해자들이 적지 않다. 이 삶을 어떻게 보상해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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