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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명의 사형확정자를 만나다

인터뷰-동행 [2021.09]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김대근 박사
32명의 사형확정자를 만나다

 

사형 집행은 1997년 12월 30일 이후 더 이상 집행되지 않았으며, 국제적으로 우리나라는 ‘실질적 사형 폐지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형제 존폐와 대체 형벌에 대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사형확정자는 59명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김대근 박사(연구위원)는 군 교도소에 수용된 4명을 제외한 사형확정자 중 32명을 면담했다. 그를 만나 끊임없이 도마 위에 오르는 사형제 존폐를 둘러싼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대근 박사
김대근 박사

 

사형확정자의 생활 실태와 특성을 살펴보다

 

면담은 법무부에 공문을 보내 허락을 받고, 사형확정자 개개인의 동의를 받아 진행됐다. 그리고 2019년 6월부터 12월까지, 서울구치소 6명, 부산구치소 3명, 대전교도소 7명, 광주교도소 10명, 대구교도소 6명을 1~2시간 동안 2번씩 인터뷰했다. 첫 번째 면담은 좋아하는 음식이나 TV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하루 일과, 생활환경, 희로애락 등 삶과 생활 전반에 대해 물었다. 반면에 두 번째 면담은 범행 당시 기억, 피해자에 대한 감정, 사형제에 대한 의견 등 다소 무거운 질문들을 물었다.

 

사형확정자의 생활환경은 교정기관의 상황에 따라 달랐다. 크게 출역 없이 독거 수용을 하거나 출역을 하며 다른 수용자와 혼거 수용을 하는 방식으로 나뉘었다. 대부분 독거 수용을 하는 것보다 혼거 수용을 선호했다. 아울러 교정기관에서 지정한 기상시간보다 일찍 기상해 개인 시간을 보낸 뒤 일과를 시작하며, 반복되는 삶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독서, 필사, 편지 쓰기, TV 시청 등을 했다.

 

한편 사형확정자의 심리상태는 천차만별이었다. 대체로 사형이 확정되면 처음엔 적응을 못해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다가, 5년 정도가 지나면 출소의 희망을 버리고 교정기관 내의 삶을 받아들였다. 일말의 죄책감도 가지지 않는 사형확정자도 있지만, 피해자에 대한 죄책감으로 정신적·신체적 트라우마에 시달리거나 더러 무죄를 호소하는 사형확정자도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 때문에 가족이 피해를 입는 것을 걱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언론의 자신의 범죄 사건 보도, 다른 강력사건 보도, 사형제 관련 보도 등이 나오면, 사형 집행에 변화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김대근 박사가 사형확정자 면담의 목적과 설명을 덧붙였다.

 

김대근 박사

 

사형확정자를 실제로 만나 보니,
끝없이 갇혀 사는 절망적인 삶 대신
사형 집행을 원하는 사형확정자들도 있었습니다.

 

“사형제에 대한 논의는 활발하지만, 사형확정자의 실증적 데이터는 부족한 실정입니다. 그래서 이번 면담은 사형제 폐지에 따른 법령 정비와 대체 형벌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기에 앞서 사형확정자의 생활 실태와 특성을 살펴보기 위해 진행되었습니다. 원활한 면담 진행을 위해 사형확정들과 라포(신뢰)를 형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개별 사건을 호기심을 갖고 접근하거나 선정적으로 다루지 않았고, 가급적 개인의 삶과 생각을 중심으로 사람 자체를 바라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사형확정자를 실제로 만나 보니, 끝없이 갇혀 사는 절망적인 삶 대신 사형 집행을 원하는 사형확정자들도 있었습니다. 사형확정자들마다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감정이 다르기 때문에 그들의 상태를 단순하게 기술하기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형이라는 형벌로 범죄를 예방하기는 힘들다

 

강력사건이 발생하거나 관련 이슈가 등장할 때마다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는 여론이 등장한다. 이는 사형제가 강력사건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기대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사형제로 강력사건이 감소하거나 사형 집행을 하지 않아 강력사건이 늘었다는 연구결과는 존재하지 않는다. 김대근 박사도 사형제는 범죄 예방의 큰 효과가 없다고 전했다.

 

“이번 면담을 진행하면서 사형제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형확정자는 거의 없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연속살인의 경우 범행 당시 흥분과 격정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연쇄살인의 경우 자신이 잡힐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범행 전에 형벌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대개는 술과 마약에 취해 의식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더불어 사형제 관련 여론조사에 따르면, 사형제 폐지를 반대하는 사람보다 찬성하는 사람의 비율이 더 높았습니다. 반대하는 사람들도 사형의 대체 형벌이 마련된다면 사형제 폐지를 찬성한다는 의견이 존치 의견보다 높았습니다. 특히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처럼 잘못된 수사와 재판으로 인해 억울하게 형을 살았거나 살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사형제는 신중히 생각해봐야 하는 제도입니다.”

 

현재 사형제를 폐지한 국가는 106개국, 사형을 집행하는 국가는 56개국, 우리나라처럼 사형 집행을 중지한 국가는 29개국이다. 이처럼 사형제 폐지나 집행 중지는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또한 천주교 주교회의에서 국회에 사형제 폐지법 발의를 요청하는 등 종교, 인권, 시민단체에서 사형제 폐지를 촉구하는 사회적 움직임이 등장하고 있다.

 

 

김대근 박사

 

절대적 종신형 VS 상대적 종신형, 사형의 대체 형벌은?

 

사형제가 폐지된다면 대체 형벌이 마련돼야 하는데, 그 대안으로 절대적 종신형이 언급되고 있다. 현행법상 무기징역은 10년 이상 50년 이하로 감형이 가능해 사형확정자 중 무기로 감형된 사람도 있었다. 아직 무기징역으로 감형되고 다시 감형돼 가석방이 된 경우는 없었다. 김대근 박사는 사형의 대체 형벌에 대한 의견을 전했다.

 

“가석방이 불가능한 절대적 종신형이 아닌 최저 복역 기간을 전제로 위험성 평가를 통해 가석방이 가능한 상대적 종신형, 다시 말해 무기징역을 최고형으로 두는 것입니다. 이번 면담을 진행하기 전에는 사형제를 폐지하고 절대적 종신형을 집행하는 것이 인권친화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가석방이 없는 무기징역은 사형보다 더한 고통이라는 사형확정자와 희망이 없는 수용자들을 관리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교도관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실제 탈옥이나 싸움 같은 일탈이 있더라도, 그것을 근본적으로 막을 방법을 찾기는 힘들다고 합니다. 물론 ‘너 또는 너의 가족이 피해자여도 사형제 폐지를 찬성하겠느냐’고 묻는다면, 저도 사형을 집행하고 싶다고 말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범죄의 적정한 형벌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쉽게 답하기가 어렵습니다. 피해자의 분노는 당연하고 감정도 존중해야 마땅하지만, 형벌의 목적이 복수나 응보에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법은 사형제의 효과, 사형제와 다른 법과의 관계, 수용자의 인권 문제, 국민의 법감정 등 종합적인 관점을 고려해 냉정한 결론을 도출해야 하는 것입니다.”

 

김대근 박사는 2019년에 이어 올해 추가로 10명의 사형확정자를 만나기로 했지만, 코로나19로 연기되어 내년에 면담을 진행할 예정이다. 또한 사형이 폐지될 때까지 이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해 노력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묻자 “범죄와 형벌에 관한 고민은 계속해서 필요하고, 사형제 폐지는 철저한 검토와 논의를 거쳐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라고 전했다.

 

김대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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