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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부터 아니올시다

문화 [2021.08] 이건희 컬렉션
그, 이름부터 아니올시다

글 박진(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관〉에 대한 이견

 

컬렉션에 대한 소문은 무성했다. 2007년 삼성그룹의 법무팀장이었던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부터 시작되었다. 거액의 비자금으로 팝아트 작품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을 포함한 다수의 미술품을 무더기 구입했다고 말했다. 이듬해 특검이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창고를 압수수색하며 작품 일부가 공개되었다. 세월이 흘러 2021년 4월 28일 상속세 납부 시한인 30일을 이틀 앞두고 삼성일가는 이건희 회장의 소장품 2만 3,000여 점(이하 ‘이건희 컬렉션’)을 기증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작품과 기증처에 대해서는 이렇게 밝혔다. ‘고미술품 21,600점은 국립중앙박물관 및 산하 국립박물관 기증, 국내외 거장들의 근대미술 작품 1,400점은 국립현대미술관 기증, 작가 연고지에 따라 광주시립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대구미술관 등에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음날 문재인 대통령은 ‘이건희 컬렉션’을 전시할 수 있는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앞서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브리핑을 통해 ‘이건희 컬렉션’을 위한 미술관과 수장고 건립 검토를 시사했다. 오히려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의 사면 등 정치적 노림수가 있는 것 아니냐’는 세간 의혹에 부담을 느껴서인지 몰라도 ‘이건희 컬렉션’의 기증에 어떠한 조건도 달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별도의 미술관 건립 요청도 아니고 국립현대미술관 등 몇 개 미술관에 기증품을 전달하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그런데 요청하지도 않았던 고인의 유지를 ‘알아서 반영’하는 정부의 결정은 이후로 올림픽 유치와 다름없는 지방자치단체들의 경쟁을 만들었다.

 

 

‘이건희 컬렉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국보 216호 ‘인왕제색도’
‘이건희 컬렉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국보 216호 ‘인왕제색도’

 

인상주의 수장 모네의 대표작 ‘수련 연못’
인상주의 수장 모네의 대표작 ‘수련 연못’

 

낯 뜨거운 유치경쟁

 

유치경쟁은 치열했다. ‘우리 지역이 적임지’라며 시장이 직접 나선 곳, 시의회를 중심으로 미술관을 유치하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챌린지가 이뤄진 곳도 생겼다. 시민단체들까지 나서 미술관 유치를 위한 시민문화행사를 열기도 했다. 초등학생 편지가 등장한 시에서는 “정치색을 배제할 수 없는 특정 현안에 초등학생들을 동원했다”는 논란이 일면서 주민들이 교육부에 시교육장 등을 징계해달라는 민원을 제기했다. 시민단체들이 나서 "차라리 시비 2,500억 원을 보건·돌봄·기후위기 대응에 예산을 투입하라"는 비판 성명을 낸 곳도 있었다.[1] 올림픽 유치 경쟁처럼 치열한 복마전에 뛰어든 지자체는 30여 곳이었다. 그런데 난리 북새통이 낯부끄러운 이유는 여러 가지다. 이건희 회장은 공과가 있다. 삼성의 역할도 마찬가지다. 삼성의 공만 보더라도 이는 경영진과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있지, 리더 1인의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런데 유치경쟁의 한가운데서 ‘이건희’라는 이름은 컬렉션에 이름을 올린 작품과 동일한 가치가 되었다. 유치경쟁의 이유로 제시된 온갖 것들이 증거다. 이건희 회장 출생지라는 이유, 선친인 이병철 회장 출생지라는 이유, 삼성 상회 창업지라는 이유, 이건희 회장 유족 거주지라는 이유, 이건희 회장이 자주 방문했다는 이유까지 등장했다. ‘삼성의 뿌리’임을 자부하는 지자체도 있었다.

 

조세형평의 원칙을 무너뜨려온 재벌의 죄는 사라졌다. 어떻게 그 많은 작품을 모았는지에 대한 근본적 의구심도 묻혔다. 지나친 유치경쟁은 지방자치선거를 앞둔, 사전 선거운동 행위처럼 보일 뿐이었다. 마치 재벌집사처럼 경쟁에 달려드는 이들을 보며 문화예술인들은 코웃음을 쳤을지 모른다. 언제부터 저토록 정부와 정치인들이 문화예술에 큰 가치를 두었는지 궁금했을 것이다. 돼지 열병과 코로나19, 지치지도 않고 이름을 바꾸고 돌아오는 역병으로 예술, 작품 활동의 기회조차 없는 그들에게 쇼는 화려하게만 보였을 것이다.

 

 

투명하지 않은 결정 과정

 

7월 7일 황희 장관은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관〉이라 명명하며 컬렉션 활용 방안을 발표한다. 통합된 별도의 공간을 마련할 것이고 최적지로 중앙박물관 용산 부지와 현대미술관 인근 송현동 부지를 정부에 제안했다는 내용이었다. ‘닭 쫓던 개 지붕쳐다보는 격이 된’ 지방자치단체가 즐비했다. ‘이건희 컬렉션’에 대한 별도의 평가와 조사를 하기도 전이었다. 발표 이전까지 숨겨져 있던, 비밀리에 운영한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 활용위원회’에 참여한 7명의 전문가와 공무원들 간의 논의로만 적어도 수천억 원의 예산이 투여될 소장품관의 건립을 결정한 것이다. 과정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 자신들 말처럼 국보급 문화재를 포함해서 총 2만 점에 달하는 컬렉션 활용방안을 고작 10차례 회의를 통해 결정했다. 공개적인 의견수렴 과정도 없었고, 어떠한 절차에 의해 기증이 이루어졌는지, 명칭은 어떻게 할 것인지, 활용에 대한 논의의 방향은 어떠했는지도 알리지 않았다. 정부는 기증품의 공적가치, 활용방안에 대한 사회적 공유의 기회를 걷어차버렸다.

 

명칭의 문제도 심각하다. 지금은 이재용 부회장 사면 문제로 예민한 시기다. 가석방 여론도 만만하지 않지만 박근혜 전대통령 탄핵과 연루된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은 법치와 인권의 기준을 바로 세우느냐를 가늠하는 시금석이다. 이럴 때 기증자들이 눈치 보며 조건을 달지도 않은 것에 정부는 ‘이건희’라는 이름을 달아주었다. 컬렉션이 만들어지기까지 과정에 대한 평가, 기증자에 대한 판단, 컬렉션에 대한 조사와 연구과정은 생략된 채 컬렉션에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알량한 ‘찬양’만을 남겼다. 공공의 미술품과 문화재가 ‘이건희’라는 이름으로 기억될 수는 없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재벌회장의 이름을 넣는 것은 문제다. 이후에 이와 유사한 방식의 기증에 대해서도 매번 같은 대우를 할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건희’는 붙일 수 있고, 다른 사람은 안 된다고 할 것인지, 혹은 국보급이 몇 점 이상이면 되고, 그 이하는 안 된다고 할 것인가? 별도의 의견수렴 시늉조차 하지 않은 것을 보면, 앞으로도 기증품과 관련해서는 대통령과 장관의 생각대로만 진행하면 된다는 선례를 만든 꼴이다. 상당한 국가 예산을 써야 하는데 공공성을 사유화했다는 비판에 대해서 할 말이 없을 것이다.[2]

 

 

국민화가 이중섭이 그려내 한국의 민족성을 상징하는 ‘황소’
국민화가 이중섭이 그려내 한국의 민족성을 상징하는 ‘황소’

 

컬렉션은 정말 상속세와 무관했던가

 

또한 컬렉션은 정말 상속세와 무관했을까? 이전부터 컬렉션과 관련한 언론의 보도는 다분히 ‘친(親)삼성’ 성향이었다. 작년 이건희 회장 사망 이후부터 언론들은 하나같이 삼성가가 부담해야 할 상속세를 걱정했다. 물납세가 본격적인 대안으로 등장한 것은 올해 초부터였다. 현재 상속세는 현금과 부동산, 일부 유가증권만을 허용하고 있다. 언론은 삼성의 상속세를 걱정하면서 물납(物納)이란 현금 이외의 대체 수단을 부각시켰다. 평론가들을 동원해 “미술품 물납제는 미술계의 오랜 숙원사업이다. 삼성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국가 미술 자산의 가치가 상승하는 것이며, 앞으로 수준 높은 작품을 국민 누구나 관람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고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3] 그러나 탈세도구로 전락할 가능성, 감정평가의 형평성과 공정성 문제 등이 제기되어 왔기 때문에 물납세 논의는 논쟁적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건희 회장 사망 보름 전 국회 입법조사처가 〈상속세 미술품 물납제도 도입을 위한 입법론적 검토〉 보고서를 발표했다. 국회 입법조사처에서 미술품 관련 보고서를 낸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관련 기관에서 그동안 미술품 물납을 연구한 경우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고 한다. 그런 차에 이건희 회장 사망 한 달 뒤 이광재 민주당 의원(강원 원주시갑)은 물납세와 관련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광재 의원은 친 삼성 인사로 분류되는 대표적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결국 법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삼성은 상속세와 무관하게 기증의사를 밝히기에 이르렀다.

 

개막을 앞둔 컬렉션의 특별전은 매진행렬이라는 기사다. 의심을 품고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의 반대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고, 작품의 양과 가치가 입증하는 찬사만이 휘황하다. 작품을 모은 사람이 그 사람인지, 부인인지도 알지 못하는데…중얼중얼…문제는 문제라고 불리지도 않는다. 작품에 묻힌 것인지, 기증자에 묻힌 것인지 알 수 없는 쟁점들은 여전하다. 그러니 하고 싶은 말은 우선 “그 이름부터 아니올시다.” 모든 과정의 소란스러움과 또는, 일사분란이 만들어낸 수많은 의구심은 남았다.

 

 

달항아리 등 한국적 도상과 색면 추상이 혼융된 김환기 ‘여인들과 항아리’
달항아리 등 한국적 도상과 색면 추상이 혼융된 김환기 ‘여인들과 항아리’

 

[1] ‘이건희 미술관’이 뭐길래… 지자체 유치경쟁 점입가경 / 한겨레 신문 2021-06-16

https://www.hani.co.kr/arti/area/area_general/999537.html#csidx0d9ea520de0e576958f0994630470d6

[2] 이 글은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관〉 건립에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 입장문’을 상당부분 반영했습니다.

https://rights.or.kr/1334 [다산인권센터]

[3] ‘이건희 컬렉션’에 숨겨진 삼성의 5대 노림수 / 시사저널 2021-03-24

http://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213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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