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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복무제도 도입은 ‘시기상조’ 였던가?

인권위가 말한다 [2021.04] ① 양심적 병역거부권 인정과
대체복무제도 도입은 ‘시기상조’ 였던가?

글 이발래 조사관(국가인권위원회 특별조사팀장)

시대에 큰 획을 긋겠다며 출발했을텐데 글쎄… 스무살쯤 되어 생각하니 모든 게 모호하고 두렵기도 합니다. 그래도 몇몇 의제에 있어서는 우리 사회에 굵직굵직한 질문을 던졌고 어떤 사안에 있어서 작은 변화나마 도모하지 않았나 하는 평가가 과도한 자기도취는 아닐 듯합니다. 딱 그런 기준에 따라 5개의 결정을 꼽아 격월간지에 곱씹는 지면을 마련해보았습니다.
20년, 9000여 결정 중 다섯 꼭지라니. 타이밍, 분야의 안배, 무엇보다 청탁의 용이성으로 선정했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2020년 6월 양심의 자유를 이유로 현역 등의 복무를 대신하여 병역을 이행하는 대체역으로의 편입·심사 및 대체역의 복무 등 대체복무 제도를 마련함으로써 헌법상 양심의 자유와 국방의 의무를 조화시키기 위해 대체역법이 제정되어 시행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초기만 해도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고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국민 다수의 반대가 있었기에 대체적으로 시기상조라는 국민의 법감정이 상당 부분 설득력을 얻고 있었다.

 

2001년 인권위 설립 이후 권고 당시까지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하여 접수된 진정은 총 9건으로, 그 내용은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하여 연간 7~8백명의 병역거부자(전과자)를 구제해 달라는 것이었다. 진정인 중에 당사자인 본인이 종교를 이유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게 되어 감옥에 갔고, 진정인의 아들이 감옥에 다녀왔는데, 또 손자가 이제 군복무를 할 나이가 되어 감옥에 갈 예정이다. 손자만큼은 감옥에 보내고 싶지 않다는 안타까운 할아버지의 사연도 들을 수 있었다.

 

이에 2005년 12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양심적 병역거부권은 헌법 제19조와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18조의 양심의 자유의 보호 범위 내에 있고, 병역의 의무는 국가의 안전보장을 위한 국민의 필요적 의무임을 확인하면서, 국회의장과 국방부 장관에게 양심적 병역거부권과 병역의무가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하도록 권고했다.

 

이러한 인권위 권고에 대하여 전쟁없는 세상, 평화인권연대, 평화네트워크 등은 “국가 안보가 개인의 기본권을 제한했던 관행을 바로잡는데 많은 기여를 할 것”이라며 “국회는 즉각 관련 법안의 입법에 힘써야 한다”면서 인권위 권고 결정을 환영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당시 정치권, 종교계 등 다수가 반대했다. 당시 열린우리당은 “인권위 결정은 논리적 판단”이라며 “그러나 국민정서와 사회적 공감대가 부족한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고 부정적인 논평을 냈고, 한나라당은 “기존 반대 입장을 거듭 확인한다. 국방의무를 마친 사람이나 현재 군 복무중인 사람, 앞으로 군에 갈 사람들과 형평성도 어긋난다”고 밝혔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 종교계도 “인권위의 대체복무제 도입 권고에 절대 반대한다”고 밝혔고, 다수의 군복무를 마친 자들도 “국가의 안위가 전제돼야만 인권이 보장될 수 있다. 이번 인권위 결정은 너무 성급했다. 국가기관이 병역기피의 문을 열어놓았다”고 비판했고, 갖은 이유로 군대를 기피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고 걱정했다.

 

대한민국 재향군인회는 “인권위가 대체복무를 이야기하는 데 사회복지와 안보문제는 서로 교환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라고, “현재 전방에서 고생하고 있는 군인들의 사기 저하가 우려된다”고 밝혔다. 국민행동본부는 “종교를 이유로 병역을 기피하는 사람들을 양심적 병역거부자라고 불러서는 안된다”면서 “이들이야말로 국가 안보상황을 무시하는 가장 비양심적인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국방부는 “대체복무 허용은 문명의 발달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원론적으로 이해하고 인권위의 결정은 존중하지만 시행 시기는 신중히 검토되어야 한다”는 입장이고, 병무청도 “병역제도는 안보 상황과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뒤 바뀌어야 한다. 대체복무 도입은 이르다”고 주장했다.

 

헌법재판소는 2004년 8월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인정하면 국가의 존립과 모든 자유의 전제조건인 국가안보의 공익을 해치게 된다”며 양심적 병역거부를 처벌하는 병역법이 합헌이라고 결정했고, 대법원도 2004년 7월 “남북 분단의 현실을 생각해 보면 국방의 의무는 국가를 존립하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의무이기 때문에 양심의 자유보다 우선한다”고 판시했다. 인권위의 이번 권고는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헌법적·법적 판단을 거스르는 것이다.

 

이런 사회적 부담을 무릅쓰고 인권위가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전향적으로 인정한 것은 국방이라는 전체적 가치보다 개인의 양심이라는 인간 존엄성의 절대성에 더 무게를 둔 것으로 파악해도 좋을 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헌법상 명문의 규정이 없기 때문에 인정하기 어렵다는 국방부 등의 주장에 대하여, 국가인권위원회는 우리 「헌법」 제19조와 「자유권규약」 제18조 양심의 자유는 종교의 자유, 학문, 예술의 자유와 함께 내심의 자유에 속하며, 정신적 자유의 모체를 이루는 인간존엄성의 기초로서 정신적 자유의 근원을 이루는 국가비상상태에서도 유보될 수 없는 최상급의 기본권이다. 따라서 양심적 병역거부권은 우리 「헌법」 제19조 양심의 자유의 내용에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강제 당하지 않을 자유(부작위에 의한 양심실현의 자유 ; 양심적 병역거부권)가 포함됨으로, 양심적 병역거부권은 양심의 자유의 보호 범위내에 있다라고 판단하였다. 이와 같이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했다는 것은 양심의 자유가 내심의 자유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양심을 외부로 실현하는 자유로까지 인정하였다는 것은 당시 학계에도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당시 병역제도는 양심적 병역거부로 인한 형사처벌과 병역의무의 이행 중 양자택일식의 해결방법 뿐이다. 「헌법」 제19조의 양심의 자유와 제39조의 국방의 의무를 조화롭게 공존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병역이외의 방법으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할 수 있는 대체복무제도를 마련하는 것이다.

 

다만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고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할 경우, 대체복무의 인정여부를 공정하게 판정할 기구가 설치되어야 하고, 대체복무의 기간은 초기 단계에서는 현역복무기간을 초과하더라도 추후 국제적 기준에 따라 단계적으로 축소하도록 하고, 대체복무의 영역은 사회의 평화와 안녕, 질서유지 및 인간보호에 필요한 봉사와 희생정신을 필요로 하는 영역 중에서 우리 실정에 맞게 채택하여야 할 것이다.

 

대체복무제도가 도입될 경우 위와 같이 조건을 제시한 것은 당시의 국민정서를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대체복무의 인정여부를 판정할 공정한 기구를 설치하라고 한 것은 우리 국민의 다수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병역기피와 혼돈하거나 고위층 등 기득권 자녀의 병역기피에 대한 분노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당시 대체복무제도 도입을 주제로 토론회 등을 개최할 경우 어려움이 많았다. 토론회를 개최하는 측에서는 찬·반 양측 전문가 등을 적절하게 배치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대체복무제도 도입 반대자들은 참석을 꺼린다. 공개적으로 반대입장을 드러내고 싶지 않다는 것이 이유이다. 설령 찬·반 양측 전문가 등을 적절하게 배치하여 토론회를 개최하더라도 병역기피에 대한 분노가 분출되어 토론회는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않는 사례가 빈번했다. 우리 국민 절대다수가 양심에 따른 병역의 거부를 병역을 기피하기 위한 수단 정도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체복무의 도입 초기단계에서 현역복무기간을 초과하도록 한 것도 대체복무를 봉사와 희생정신을 필요로 하는 영역으로 한 것도 국민정서를 반영한 결과로 봐도 무방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와 같은 권고 결정을 위하여 전문가의 자문,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 청취 등을 거치는데,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하여 권고 결정 이전 2005년 10월경 특별히 청문회를 개최하였다.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진정사건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이에 대한 입장을 수립하기 위하여 관련 기관·단체에 의견을 조회하고, 관련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는 등 관련 절차의 일환으로 청문회를 개최하였다. 청문회는 국가인권위원장이 주재하고, 정책위원회 소속 인권위원이 청문위원으로, 국방부 인사국장, 병무청 선병국장, 단체관계자, 전문가, 피해자 대표 등이 진술인들에게 질의하고 청취하는 방식으로 개최되었다.

 

당시 청문회를 개최하면서 계획 명칭이 변경되는 이례적인 일이 발생하였다. 국가인권위원회 정책위원회는 청문회의 당초 명칭 “양심적 병역거부권 및 대체복무제도에 관한 청문회”에서 ‘'대체복무제” 용어를 삭제하고, “양심적 병역거부”를 “신념의 의한 병역거부”로 변경하도록 결정하고, 참석자에게 통보한 결과, 연대회의는 “소위 양심적 병역거부”, “종교적 병역거부”, “신념에 의한 병역거부”의 명칭은 국방부를 비롯한 병역거부에 대해 강한 반대의견을 갖고 있는 쪽의 주장이라면서 “신념에 의한 병역거부”를 “양심적 병역거부”로 변경 요구하였고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청문회에 불참하겠다고 통보하였다.

 

이에 인권위 정책소위원회에서는 청문회 명칭은 ‘신념에 의한’으로 하되(기 발송 공문 제목대로) 다만, 청문회 개최시 용어에 대하여 청문하고 발언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추후 전원위원회에 상정하여 인권위 입장을 수립할 경우 용어를 논의한다고 결정하였다. 청문회 당일(2005년 10월 19일) 현수막에는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청문회”라고 씌여 있었다. 용어 논란의 문제는 15여년 전의 일이라 지금 생각해 보면 좀 이해가 안되지만 당시 국가인권위원회와 단체활동가들 입장에서는 심각했다.

 

청문회에서 찬·반 논쟁, 피해자 입장, 국방부·병무청의 입장 등을 청취하였다. 그런데 그 중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게 되면 병역거부자 숫자만큼 병역손실이 생겨서 국가안보에 커다란 문제가 발생한다는 국방부와 병무청의 주장이 있었다.

 

그런데 국방부는 2005년 9월 발표한 국방개혁안에 따르면, 병력을 68만 명에서 50만 명으로 줄이고, 2008년까지 병사를 중심으로 단기적으로 6만 여 명을 감축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2004년 한해 군병력을 9,000명 감축한 사실이 있다는 것을 청문회에서 확인하였던 것이다. 수감 중인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연평균 7~800여 명으로 이들에게 무기를 들지 않는 분야에 종사하게 해도 군 병력유지와 전력유지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이 명백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특히 국방부의 병력 감축계획과 감축규모 그리고 전년도 감축사실을 종합해 보면 안보환경이 대체복무제도 도입여부를 판단하는 결정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당시 국방부 인사국장은 현재 병역자원이 부족한 것이 아니고, 군병력 9,000명을 감축하는 등 감축해 가는 과정에서 병역자원이 부족하다는 것으로 군병력유지와 전력유지에 문제가 없다는 내용을 확인하면서 매우 당황하고 곤혹스러워 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대체복무제도 도입에 대하여 2005년 권고한 이후에도 2017년 대체복부제 도입 권고 및 병역법에 대한 의견표명, 2018년 병역법개정안 및 대체복무역법에 대한 의견표명 등을 통해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형사처벌하는 것은 헌법상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에 해당하기 때문에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을 지속적으로 피력해 왔다.

 

이와 같이 국가인권위원회는 국가가 일방적인 형벌권을 행사하여 사회적 소수자인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갈등을 해결하는 효과적인 대안을 지속적으로 제기한 것이고, 강고한 안보논리를 극복하고 소수자 인권을 선택한 국가인권보호기구로서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양심의 자유는 다수가 형성한 법질서에서는 배제될 수밖에 없겠지만, 다수와 공존할 수밖에 없는 소수자의 양심이 충돌하거나 갈등할 때 다수의 관용과 배려가 소수자와 더불어 사는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줄 수 있을 것이다.

 

2020. 6. 30 양심의 자유를 이유로 한 대체복무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는 대체역의 편입 및 복무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었고 2021. 2. 현재 2,052명이 대체복무를 신청, 944(942명이 특정 종교 신자)명에게 대체복무가 허용되었다.
2021. 2. 24. 종교 아닌 ‘평화주의’ 양심적 병역거부자 오수환(30)씨에 대해 대체복무가 인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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