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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환의 씨앗을 훔쳐보다

밀레니얼이 말하는 인권 [2020.06] 쓰레기를 대하는 태도에서
대전환의 씨앗을 훔쳐보다

글 송경호 공동대표(더 피커)

 

우리가 이전 세대로부터 주어진 유산에 안주할 수 없는 이유는, 다음 세대로 이어줄 유산을 남겨 두기 위해서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속가능한 환경과 인권이 조화를 이루던 과거의 지점을 찾아내어 회복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로웨이스트’라는 신인류의 탄생과 활동은 맹렬한 기세를 띄고 있지는 않지만 지속가능한 미래를 충분히 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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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웨이스트 시민, 신인류의 출현

“쓰레기 분리배출, 잘하고 계신가요?”라는 질문 앞에 우리나라처럼 제법 어깨가 으쓱하는 곳은 몇 없을 것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쓰레기를 종류별로 차곡차곡 버리는 우리는 실제 세계적으로 분리배출에 있어 높은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쓰레기를 얼마나 적게 만들고 계신가요?”라는 질문에는 그 생소함에 많은 사람들이 적잖이 당황한다. 그리고 이처럼 미미하게 다른 질문을 나란히 놓고 보면, 나는 미묘한 상실감을 느끼곤 한다. 높은 수준의 분리배출율과 더불어 재활용 기술과 생분해 기술의 발전 그리고 업사이클링 문화의 폭넓은 수용에도 불구하고 나아진 만큼 줄어들어야 마땅한 쓰레기의 문제는 여전히 요지부동이기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상실감이 밀려오는 것이다.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상실된 연결고리는 쉽게 포착 할 수 있다. 인류가 기술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쓰레기양에 비해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의 양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아주 간단한 산술적 사고만으로도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을 우리는 왜 오랜 시간 알아채지 못했을까? ‘호흡’처럼 우리가 쉽게 인지하지 않는 동시에 누구에게나 주어진 것은 잊히기 마련인데, 쓰레기 문제도 이러한 종류다. 쓰레기 문제는 상투적인 도덕 문제로 치부되거나 거리의 경관에 위해를 끼치는 수준으로 특별히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주제에 머물러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래 들어 ‘제로웨이스트’라고 표현되는 쓰레기 없는 삶에 관심을 갖는 이가 격증했다. 이른바 ‘제로웨이스트 시민’의 출현이다. 거대한 사회적 위기를 기점으로 생겨난 생존형 신인류라고 설명하면 적절할까? 인식에서 멀어질 만큼 자연스러운 ‘호흡’에 갑작스레 가해진 이물감은 기침을 통해 숨의 존재를 알렸다. 다시 말해 ‘쓰레기 대란’이라고 불린 2018년 쓰레기 수거 중단 사태는 수많은 사람에게 체감할 수 있는 불편과 커다란 충격을 안겼고 이는 위기의식으로 자리 잡기에 충분했다. 공적 영역으로 규정짓던 ‘쓰레기 처리’ 문제에 개개인이 관심을 가지게 됐고, 저녁에 문 앞에 두면 다음 날 홀연히 사라진다고 믿었던 쓰레기의 행적을 쫓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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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 투표’, 세상을 지키는 현명한 소비

환경 문제가 공공 영역에서 개인 영역까지 확장되는 양상은 한계 수준에 들어선 환경오염의 회복 가능성을 무한하게 담보할 수 있다. 인류는 족적을 남긴 이래 단 한 번도 쓰레기로부터 자유로운 적이 없었지만 순환의 고리를 벗어난 삶을 통해 문제에 직면한 시기를 추산해보면 근 100년이 되지 않는다. 인류의 오랜 역사는 짧은 시간 동안 급변하여 ‘위기’라는 표현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것이다.
그 시간을 면밀히 뜯어보면 산업화 이후 물밀 듯이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의 양적인 문제와 썩지 않는 쓰레기라는 질적인 문제가 수반되고 있었고 개인은 소비의 방법을 선택할 여유조차 없었다. 위기 이후, 문제적 쓰레기 생산이라는 꼬리표를 단 우리에게 드디어 소비에 대해 생각할 쉼표가 생겼다. 생존의 방향으로 나아갈지, 멈춰 설지를 결정하는 개개인의 생각은 그야말로 회복을 향한 하나의 투표권인 셈이다.
개인의 실천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활동의 시작은 희망적인 일이다. 개인의 실천은 분절된 하나의 점이었지만 투표의 속성을 동반하면서 점묘화처럼 분명한 그림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제로웨이스트 시민은 화폐를 사용하는 곳을 구별함으로써 지속가능한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단지 좋은 제품 혹은 저렴한 가격이라는 소비 기준을 확장해 생산부터 폐기에 이르는 전 과정을 들여다보며 나의 구매가 미칠 파급력을 고려한 합리적인 소비로 기업을 구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테면 제품 자체가 플라스틱인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사용 과정에서 이탈한 미세플라스틱이 해양생태계의 오염과 수질오염으로 우리에게 돌아오고, 폐기 단계에서의 과도한 소각은 미세먼지라는 대기오염으로 우리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인식했다.
근시안적인 소비가 남긴 것은 환경오염뿐만 아니라 우리가 정수기와 페트병 생수, 공기청정기 없이는 건강을 유지할 수 없다는 실체화된 공포로 다가왔다. 제로웨이스트 시민들은 개인에게도, 세상에도 더 나은 것을 위해 화폐 투표를 단행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쓰레기 없는 삶을 제안하는 소비 플랫폼의 활동영역은 점차 늘어나고 있고 같은 활동을 추구하는 개인의 집합은 기업에 지속가능성에 대한 답변을 요구하며 제품의 변화와 포장의 감량 등 가시적인 변화를 끌어내기도 했다. 이렇듯 환경 지향적인 소비와 개인의 선택권의 절묘한 만남은 우리의 생존과 회복에 무게 추를 더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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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운동의 세분화된 형태

아버지 세대의 민주화 운동은 시민이 죽은 권리 위에 세워진 발전에서는 어떠한 의미도 찾을 수 없음을 알기에 시작됐다. 이처럼 지금의 세대 또한 각 문제에서 개인의 권리와 책임을 온전히 나누어 가지면서 세분화된 민주화 운동을 시작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제로웨이스트 플랫폼 운영을 시작했던 초기에 많이 받던 질문은 정부 혹은 환경단체에서 해야 하는 일을 왜 개인이 시작하게 되었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구태의연한 질문은 사라지고, 많은 언론과 콘텐츠가 개인이 실천하는 제로웨이스트 소비에 주목하고 이러한 소비행태가 만드는 놀라운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 더 나은 미래의 주체를 개인에게 부여하고 있는 이 변화 또한 참 감사하다.
포장쓰레기로 시작하여 건강한 소비문화 회복에 이르고, 개인의 실천으로 시작하여 세상을 아우르는 것. 생존 앞에서 선택을 논할 수 있는 자유와 생명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합의를 끌어낼 수 있는 작고도 완성된 민주주의. 어쩌면 인위적인 동시에 생태의 순환법칙과도 결을 같이한다. 쓰레기 없는 삶을 선택한다는 것은, 생태계의 법칙을 배워나간다는 의미가 있다.
성장 일변도로 달려온 우리 세계를 이제는 되돌아볼 때다. 다방면에 걸친 산업화는 온 인류를 고속 성장의 가도에 올려놓았지만, 속도전에만 매몰된 번영의 체제에서는 많은 것들이 그 생명의 온기를 잃는다. 생명의 흔적이 없는 체제보다 더 무서운 모순이 있을까? 그렇기에 이 씁쓸한 모순 앞에서 속도전이 남긴 쓰레기의 문제를 실마리 삼아 생명을 탐색해내는 제로웨이스트 시민의 출현을 크게 반겨본다. 꼭 쓰레기의 문제가 아니어도 좋다. 모든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되어 있고 개인은 어떠한 문제든 실천할 수 있고 우리는 어디서든 조우할 수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기 다른 사회 문제를 가지고 우리는 탐험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 당장 시작하는 당신의 세상을 향한 투표. 그 민주 항쟁을 응원한다.

 

 

송경호 공동대표는 제로웨이스트 플랫폼 ‘더 피커(The Picker)’를 운영하며 지속가능한 소비문화를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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