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도범이 된 민씨 이야기 ② 읽기 : 자유토론 | 알림·공고·참여 | 국가인권위원회
모두보기닫기
절도범이 된 민씨 이야기 ②
등록일 : 2018-11-07 조회 : 2351
절도범이 된 민씨 이야기 ②

서울 광진구 어느 주택에 세 들어 살면서 절도범이 된 민씨의 두 번째 이야기이다. 임대인 석수연씨(가명, 78세)는 영감 유품인 돌로 된 쌍 두꺼비를 임차인 민영환씨(가명, 68세)가 훔쳐갔다며 2017년 11월 경찰에 고소했고 검찰에서 ‘화해’를 권했으나 석씨가 이를 거부하자 ‘혐의없음’으로 처분했다. 석씨는 고검과 고법에 ‘재정신청’과 ‘항고’를 거듭했지만 역시 ‘혐의없음’, ‘기각’ 결정이 났다.

그러기까지 10개월간 절도죄 피의자가 된 민씨는 경찰과 검찰에 출두해 진술하고, 의견이나 답변 서류를 작성해 제출하는 등 절도죄를 저지르지 않았음을 항변하느라고 세월을 보내야했다. 민씨는 석씨가 지검과 고법에서까지 ‘혐의없음’처분, ‘기각’결정이 됐으니 이제는 멈추리라고 생각했다.

한편 민씨는 전세보증금을 받고 이사를 해야 하니 계약만기 3개월여를 앞두고 ‘만기일 이후에는 더 기거할 의사가 전혀 없음’을 내용증명 우편으로 통보했다.

10월 5일 새벽잠을 설친 민씨는 침대에 누운 체 스마트폰으로 형사사법포탈 사이트를 열어보고 억장이 무너졌다. 고등법원으로부터 ‘기각’결정까지 당한 석씨가 9월18일 이미 대법원에 ‘재항고’ 했음을 이제야 알았다. “이러다가 정말로 절도범이 되어 감옥에라도 가게 되는 건 아닌가?” ‘만약’, ‘혹시’ 하는 단어가 한시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석씨가 무슨 내용으로 재항고를 했는지를 알아야 의견서나 답변서를 낼 것이니 대법원 민원실에 재항고장 ‘열람복사신청’을 한다. 대법관의 결재가 났다는 연락을 받아야 가서 열람이나 복사를 하게 된다. 드나드는 절차도 까다롭다. 소지품 전체를 꺼내고 몸수색을 당해야한다. 은행에 가서 수입인지도 사서 내야한다. 검색대를 통과하려는 70대 어떤 노인이 하던 말이 생각난다. “나 그런 사람 아니여! 일흔이 넘었는디, 내가 무슨 일이라도 저지를 사람으로 보여?”

최종 결정이 나기까지는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잠을 제대로 잘 수도 없다. 대법원에서 열람 복사를 마치고 돌아오면서도 형사사법포탈 사이트를 열어보게 된다. 석씨 측에서는 참고자료라고 하는 것을 바로 그날 접수한 게 아닌가! 그럼 또 열람복사신청을 해야 되고, 대법관 결재를 기다렸다가 또 가야 열람이나 복사를 할 수 있다. 그러기를 거듭하니 진이 빠진다. 그 후로도 석씨는 몇 차례 참고자료니 참고서류니 하는 것을 제출한다.

석씨는 민씨와는 달리 변호사를 선임했다. 진술하는 내용 녹취록을 작성하고 공증을 받아 대법원에 제출하는 등 생사람 잡기에 목숨이라도 건 듯하다. 민씨가 대법원에 낸 서류 중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있다.

“피고인은, 본 사건 외에 고소를 해보거나 피의자가 돼 본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증인으로 진술을 해 본적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본건으로 법무사나 변호사를 찾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잘못한 일이 없고 떳떳하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이긴다는 신념으로 본 사건에 임하고 있습니다.”

석씨가 변호사를 통해 낸 서류 중 다섯 명의 증인 진술서가 있다. 증인이라고 하는 그들은 석씨의 큰아들, 작은아들, 큰며느리, 여동생(추정. 성, 말씨, 모습이 같고, 늘 같이 지냄), 건물관리인이다. 있지도 않은 일, 하지도 않은 말을 만들어 석씨가 주장한 그대로 진술했다. 작은아들은 원래의 돌 두꺼비 사진을 찍어 뒀는데 못 찾았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10월 29일, 경남 고성군에 사는 철수친구가 왔다. 내 이야기를 들은 친구는 세상에 그런 일도 있느냐며 놀란다. 대법원 가는데 같이 가잔다. 갔다 와서 헤어지며 힘내라고 위로를 한다. 고향에 내려가서도 못내 걱정이 돼 전화해 주는 친구가 고맙다.

민씨가 지난 4월 서울동부지검 청사를 가는 날은 봄비가 하염없이 내리더니, 대법원 청사에 가는 날도 가을비가 내렸다. 민씨의 기분은 더 우울하고 착잡했다. 2018년 10월 30일, 그 때와는 달리 민씨가 출근하는 발걸음이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올해 첫 얼음이 얼어 차가운데도 유난히 햇빛이 찬란하고 공기는 맑았다. 출근하자말자 형사사법포탈 사이트를 열었다.

“피고인 민영환(가명)에 대한 청구인 석수연(가명)의 ‘재정신청 기각결정에 대한 재항고 사건’ 대법관 4명 전원일치의견으로 ‘기각’ 결정”이라 적혀 있었다. 민씨는 11월 2일 판결문 등본을 받아왔다.

기각결정 전날인 10월 29일 석씨가 대법원에 제출한 ‘참고서면’이라는 것을 제출했다. 무슨 내용이 적혀 있는지 궁금해서 또 대법원에 갈 것이라고 한다.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받아야할 전세보증금문제다. 모두 네 차례 재계약의사 없으니 전세보증금을 반환해 주라고 내용증명 우편물을 보냈다. 석씨는 ‘최고장’이라는 내용증명 우편물을 보내왔다. 요지는 “불기소처분(기각) 받아도 허위진술이기 때문에 인정하지 않겠다. 민사법으로 손해배상 청구할 것이다. 목숨 걸고 끝까지 할 것이다. 전세보증금은 꿈도 꾸지 말라!”

민씨는 허허 쓴웃음을 짓는다.

첨부파일

공감 0 반대 0
담당부서 : 정보화관리팀
연락처 : 02-2125-9784

현재 페이지에서 제공되는 서비스에 대해 만족하십니까?

위로

확인

아니오